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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네 살부터 깎아라 … 수수료 전쟁 나선 대형마트 - 카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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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아무리 대형마트가 갑이라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살려면 수수료를 올려야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현대카드 관계자)

 “출점 제한에 휴일 영업금지에 카드 수수료까지 정말 너무 한다. 중소 가맹점 돕는 건 좋은데 왜 그 비용을 우리가 내나.”(한 대형마트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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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놓고 또다시 먼지깨나 날리게 생겼다. 대형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 협상 시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신용카드사들은 이미 한 차례 수수료 전투를 치렀다. 6월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을 9월 조기 시행하며 연매출 2억원 이하 중소 가맹점에 1.8%였던 우대 수수료율을 1.5%로 낮춰준 것. 수수료율을 깎아주면 그만큼 카드사 이익이 준다. 타격을 만회할 방법은 하나다. 12월 22일 여전법 시행에 맞춰 대형 가맹점 수수료를 올리는 것이다. 쉬울 리 없다. 대형 가맹점은 “거래처를 바꾸더라도 순순히 올려줄 순 없다”고 맞서고 있다. 수수료 인상 한 달 전에는 협상이 마무리돼야 한다며 금융당국도 은근한 압박에 나섰다. 수수료 전쟁 2라운드가 본격 개막된 셈이다.

 현재 통신회사·대형마트·자동차회사 등에서 내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매출의 1.43~1.7% 수준. 음식점(2.38%)이나 미용실(2.47%)같이 규모가 작은 업종에 비하면 1%포인트 가까이 낮다. 이걸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바로잡으라’는 게 개정 여전법이다. 그러려면 대형마트의 수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신용카드사들은 “카드사 간 출혈 경쟁으로 지금까지 대형마트 등에는 원가 이하로 수수료를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원가를 따져 제값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카드사는 원가 산정을 위해 컨설팅회사에 용역을 의뢰했다.

 문제는 카드사가 원가를 따져 수수료율을 인상한다 해도 대형 가맹점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냐다. 매출액이 큰 대형 가맹점의 경우 “카드 거래를 끊겠다”거나 “다른 카드와 마케팅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할 수 있다. 협상력이 달리는 소형 카드사들이 인상 논의에 소극적인 이유다. 롯데카드 관계자는 “중소 카드사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형 카드사들이 협상을 먼저 끝내면 분위기를 보고 테이블에 앉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카드업계는 ‘연합 작전’도 모색 중이다. 각자 수수료율 인상 폭을 결정해 놓고, 11월 초께 한꺼번에 공문을 보내 이를 ‘통보’한다는 것이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각개격파를 하다 협상력에 밀려 물러서면 곤란하니 거의 동시에 부닥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카드업계에 퍼져 있다”며 “수수료율 인상 폭을 서로 상의하는 건 아니니 담합으로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가맹점 측도 카드사 공세를 맞받아칠 태세를 마쳤다. 신용카드 매출액이 큰 대형마트가 가장 적극적이다. 전국 대형마트의 지난해 매출(37조원) 중 신용카드 결제액은 28조여원. 가맹점 수수료율이 0.3%포인트만 올라도 연간 850억원의 수익이 준다는 계산이다. 홈플러스 등 일부 대형마트는 로펌과 자문계약을 맺고 대응 논리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가맹점이 펼치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 “가맹점 수수료를 올리기 전에 카드사가 먼저 제 살을 깎으라”는 것과 “원가 산정을 한다면 우리에게 검증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 모임인 체인스토어협회는 이미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금융위원회에 두 차례 제출했다. 고상범 체인스토어협회 대리는 “카드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010년 카드업계가 지출한 마케팅 비용만 4조3000억원에 달한다”며 “이런 비용을 줄이면 굳이 대형 가맹점 수수료를 올리지 않아도 카드사가 수익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계산”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서민 정책의 비용을 대형 가맹점에 전가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가 0.1%포인트 오르면 연간 손실이 110억원 정도 나는 걸로 계산된다”며 “일정 부분은 물건 값에 전가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소비자 손해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대형 가맹점을 압박해서라도 수수료 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김영기 금융감독원 상호여전감독국장은 “카드사가 이번에 물러서면 평생 을의 위치로 살 수밖에 없다”며 “법에 정한 대로 정당한 수수료율을 요구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관련 내용을 신고받아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박사는 “대형마트나 종합병원의 평균 결제 금액은 의외로 중소 가맹점과 큰 차이가 없다”며 “비용이 낮아서가 아니라 협상력을 내세워 낮은 수수료를 내왔다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카드 수수료율 역시 시장 가격으로 거래 당사자 간 지위 등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국세청·공정위까지 동원해 개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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