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 CEO 판디트 사임 … 오닐의 ‘친위 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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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마이클 코뱃(左), 비크람 판디트(右)

#16일(현지시간) 아침 7시45분. 막 출근길에 오른 씨티그룹 핵심 임원들은 갑작스레 걸려온 회사전화를 받고 당황했다. 비크람 판디트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과 함께한 5년은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경영진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15분 동안 이어진 통화 끝에 그는 짧게 끝을 맺었다. “나는 이제 사임하려 합니다.” 전화를 받은 임원 누구도 아무 말 못했다.

 #15일 뉴욕 씨티그룹 본사에선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본래 이튿날 열릴 예정이었으나 마이클 오닐 회장의 호출로 하루 앞당겨졌다. 이사회가 끝난 뒤 오닐 회장은 판디트 CEO를 따로 불렀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판디트, 이제 당신이 물러나야 할 때가 된 것 같소. 아니면 해임을 각오해야 할 거요.” 판디트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답했다. “물러나겠습니다.”

 #9월 말 오닐 회장은 런던의 마이클 코뱃 유럽·중동·아프리카 대표를 전화로 불렀다. 코뱃은 2008년 금융위기 후 씨티은행의 부실자산만 따로 모은 ‘배드 뱅크(bad bank)’인 씨티 홀딩스 관리를 맡았던 인물이다. 당시 이를 감독한 오닐의 눈에 들었다. 오닐은 코뱃에게 당장 뉴욕으로 오라고 말했다. 급하게 본사로 날아온 코뱃에게 오닐은 말했다. “자네가 CEO를 좀 맡아주게.”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전한 미국 3위 금융그룹 씨티의 판디트 CEO 사임 뒷얘기다. 오닐은 판디트가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동안 이사회 멤버들과 경영진 교체를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지난 주말 뉴욕으로 돌아온 판디트는 영문도 모르고 이사회 준비를 하다 뒤통수를 맞았다.

 판디트는 2007년 씨티그룹 집행이사회를 이끈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에 의해 CEO로 발탁됐다. 모건스탠리 출신으로 올드레인파트너스란 헤지펀드를 세워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판디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씨티그룹은 그의 헤지펀드를 1억6500만 달러를 주고 인수하기까지 했다.

취임 5개월 만에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맞은 판디트는 씨티그룹을 파산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45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정부의 간섭을 감수하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독배’가 됐다. 1998년 보험그룹 트래블러스와 씨티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씨티그룹은 ‘대마불사’의 대명사였다.

 월가 개혁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정부로선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판디트가 눈엣가시였다. 특히 구제금융을 관리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쉴라 베어 전 의장의 눈밖에 났다. 베어는 판디트가 씨티그룹 같은 거대 금융그룹을 이끌 능력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그의 사임을 이사회에 종용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스트레스테스트(은행 건전성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씨티그룹에 ‘불합격’ 판정을 내리자 주주들의 불만도 폭발했다. 판디트 재임 기간 주가가 90%나 곤두박질했는데, 스트레스테스트마저 통과하지 못하는 바람에 씨티그룹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월 주주총회에서 판디트에 대한 1490만 달러 연봉 지급 안건이 부결되는 ‘주주 반란’으로 이어졌다. 판디트가 사면초가에 몰리자 씨티그룹 장악에 나선 오닐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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