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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급 멘토가 지도하는 공부방… 월 7000원 기숙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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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03면

충남 서산시의 삼성토탈 교육문화센터 내 ‘꿈나무 동산’에서 어린이들이 책을 골라 읽고 있다. 책 선정과 구입, 독서 교육까지 직원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이다. [사진 삼성토탈]

‘사(社)교육이 사(私)교육을 책임진다’.
충남 서산의 석유화학업체 삼성토탈의 가족 친화 경영을 소개한 책자의 한 구절이다. 지방에 사업장을 둔 기업들이 겪는 인재난과 해결 노력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현장을 보기 위해 11일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삼성토탈 사원아파트를 찾았다.

‘양재·기흥 라인’ 以南 기업들의 눈물겨운 인재 유치

“내 아이뿐 아니라 동네 다른 아이들도 함께 돌볼 수 있어 좋죠.” 이 회사 이민재 수석연구원의 부인 김규영(38)씨의 첫마디다. 그는 아파트 단지 입구의 삼성토탈 교육문화센터에 있는 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도서관을 관리하는 틈틈이 아이들에게 영어 책을 권하고 읽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초등학생 두 아들도 늘 함께다. 도서관은 작지만 깔끔했다. 아이들은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골라 편한 자세로 읽는다. 책 읽기가 지루해진 아이들은 도서관 바깥의 아담한 잔디밭에서 뛰논다. 김씨는 2010년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박사 학위를 딴 남편을 따라 한국에 돌아왔다. 서산이 근무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김씨는 “아이 교육이나 일상생활 등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삼성토탈이 다양한 교육·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설명에 서산행을 결심했다는 김씨는 “기대했던 수준 이상”이라고 말했다.

특목고와 명문대 입학생 늘어나
센터 3층에는 중·고생을 위한 독서실 겸 공부방 ‘아이비 스쿨’이 있다. 한가운데 세 개의 상담실은 매일 오후 자원봉사자 멘토들이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상담하는 공간이다. 멘토들은 모두 명문대나 해외 유학을 거친 삼성토탈 직원들이다. 멘토들의 반응도 좋다. 삼성토탈 촉매연구팀 이진우(35) 책임연구원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학생 생활관리 등 사감 역할은 주부들이 직접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필요한 부분은 언제나 묻고 상담할 수 있는 제2의 학교인 셈이다. 문 연 지 3년 만에 아이비 스쿨은 자리를 잡았다. 매년 외국어고·과학고와 명문대 입학생을 여럿 배출했다. 학생·주부들의 만족감도 높다.'

여느 지방 소재 기업과 마찬가지로 중·고생 자녀를 둔 삼성토탈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교육이었다. 지방 소도시라 사교육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중학교만 들어가면 자녀와 부인이 서울 등지로 떠나 직원만 남는 기러기 가족이 흔했다. 변형섭 총무팀장은 “미혼 직원을 위해 지은 기숙사에 기혼 직원이 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비 스쿨이 상황을 바꿨다. 학생·주부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서울로 떠났던 가족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육문화센터는 직원 부인들이 스스로 꾸민 10개 모임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꿈나무 동산과 아이비 스쿨 외에 자원봉사, 한식, 기록문화, 문화체험, 정보기술, 원예 등 분야가 다양하다. 자원봉사 조직을 이끄는 황수정(49)씨는 “우리 모임은 서산시에서 가장 열성적이고 전문적인 것으로 유명하다”고 소개했다. 문화체험 모임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격주 토요일마다 70회 넘는 행사를 했다. 10개 모임을 총괄하는 왕성희(47) 회장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자생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삼성토탈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당시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미국을 오갔던 한 임원은 “입사를 약속했던 사람이 갑자기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알아보면 가족이 지방 근무를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석유화학 공장을 수도권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연구소도 현장에 함께 있어야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2001년 공장 안으로 이전한 터였다. 인재를 유치하고,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면 회사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 경영진은 가정과 회사를 합친 ‘홈퍼니(hompany) 경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이나 문화에 대한 욕구는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장 이하 임직원들은 직원·가족들과 수많은 토론 모임을 갖고 의견을 경청했다. 시설이나 자금 지원보다 직원·가족들의 자발적 참여와 만족을 끌어내는 게 중요했다. 손석원 삼성토탈 사장은 “홈퍼니 경영은 직원과 그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회사가 존립할 수 없다는 절실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홈퍼니 경영 덕에 해외에서 공부한 인재들도 현장근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회사 촉매연구팀 박정현(37) 박사, 분석연구팀 조효순(35) 박사 부부는 함께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학위를 딴 뒤 2010년과 지난해 각각 입사했다. 조 박사는 “회사에서 서울 못지않은 교육·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데 호감이 가 입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충청권 벗어나면 백약이 무효
취업자들의 ‘인(in)-서울’ 집중 현상은 지방에 대규모 사업장을 가진 회사들 모두의 고민거리다. 제조업만 그런 게 아니다. 대기업 계열 보험사의 한 임원은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지방에만 보내면 사표를 던지는 신입사원이 많았다”며 “요즘엔 조직에 안착하는 입사 3년 차 전에는 아예 지방 발령을 안 낼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주 사업장을 두고 있는 SK하이닉스는 통근버스를 대규모로 운영해 지방 근무에 따른 피해 의식을 줄이려 한다. 이천·청주 두 사업장에서 하루 평균 435대의 통근 버스로 1만6500여 명을 서울과 인근 지역으로 출퇴근시킨다. 가히 운수업을 할 만한 수준이다. 직원이 사업장 근처에서 살겠다면 다양한 혜택을 준다. 미혼 직원은 월 7000원에 기숙사를 쓰고, 기혼 직원에게도 임대 아파트를 시세보다 훨씬 싸게 제공한다. 박현 홍보부장은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커뮤니티 활동을 위해서도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의 연구단지인 대전 대덕 연구개발특구. KAIST를 비롯해 10여 개의 국책연구소와 대기업 R&D센터가 위치한 이곳에서도 인재를 구하고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기회만 있으면 서울로 떠나려 해서다. 대전 지역에서 시작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실리콘웍스는 본인·가족의 의료비 지원은 물론 주택자금 대출, 연중 리프레시 휴가제도를 운영한다. 세트랙아이도 유치원부터 자녀 학자금 지원에다 가족 생명보험, 안식년제까지 실시한다. 대덕에 자리 잡은 정부 출연 연구소들도 마찬가지다. 화학연구소는 최근 ‘연구인력 이직 방지 대책 수립’ TF를 가동했고, 표준연구소는 내년부터 최첨단 아동보육시설을 지원할 계획이다.

충청권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이런 대책도 잘 통하지 않는다. 해안 지역에 거점을 둔 조선업체들이 사업장과 동떨어진 서울·수도권에 연구소를 새로 짓는 이유다. 연구개발 능력을 확충하지 않고는 중국 등 후발국에 대한 경쟁력 우위가 사라질 것이라는 절박함에서 나온 선택이다. 첨단 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국에 사업장이 있는 삼성전자는 서울 우면동에 1만여 명이 근무하는 종합 R&D센터를 짓는다. LG전자는 서초R&D캠퍼스 등 서울에만 5곳의 연구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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