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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는 내 사는 곳과 어우러져야 제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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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13면

태운 향나무 가지 위에서 익힌 가리비. 양념을 하지 않아 식재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2008년 스물넷의 망누스 닐손은 셰프의 길을 포기했다. 요리학교를 거쳐 L’Astrance와 L’Arpege 등 유수의 레스토랑을 거쳤지만 ‘더 이상 새로운 맛을 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대신 와인 칼럼니스트가 되려 했고, 잠시 스웨덴 북부의 시골마을 오레를 들렀다. 그리고 우연히 레스토랑 ‘페비켄 마가시네트(FVIKEN MAGASINET)’를 발견했다. 거기서 다시 칼을 잡는 계기를 찾았다.

‘뉴 노르딕 퀴진’ 달인, 스웨덴의 망누스 닐손

닐손은 레스토랑 앞 들판에서 당일 요리에 쓸 식용 꽃과 풀을 얻는다.

“주변 농장에서 키운 채소나 주변 지역(트론헤임)에서 잡은 생선 육류까지, 모든 식재의 퀄리티가 좋았다. 그쯤이면 북유럽 요리를 뜻하는 노르딕 퀴진이 아닌, 우리 식당만의 요리 ‘뉴 노르딕 퀴진’을 할 만하겠다 싶었다.”

‘페비켄’은 식재의 70%를 주변 농장과 축사에서 얻는다. 실제 레스토랑에서 5분쯤 걸어가면 그가 운영하는 농장이 있다. 그렇다면 겨울엔? 다양한 저장법을 활용한다. 허브와 채소, 고기를 말리고 절이고 발효시킨다. 채소는 김치처럼 소금을 약간 뿌려 절이고 다시 식초나 설탕을 가미하는 방법을 쓴다. 그래서 식당 건너편, 두 겹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저장고에는 나무 상자마다 채소가, 유리병마다 말린 허브가 그득했다.

식당 내부에도 ‘야생’이 묻어났다. 한낮에도 내부는 부분 조명만 켜 어두침침했다. 2층 홀엔 돼지고기 덩어리와 어란을 천장에 달아 그대로 말린다. 늑대털로 뒤덮은 롱코트, 각종 새들의 깃털과 목을 잘라 만든 테이블 센터피스, 새 깃털들을 엮어 천장에 매단 장식들이 날것의 분위기를 더한다.

이곳은 올해 ‘세계 레스토랑 50’에 뽑힐 정도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최소 5개월은 기다려야 겨우 예약이 된다.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거듭 “나의 요리는 페비켄이라는 이 특별한 곳과 어우러져야 제대로 맛이 나는 요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치를 예로 들었다. “스톡홀름에서 먹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나는 배추와 양념으로 만들어야 진짜 김치 맛 아니겠나.”

‘세계 레스토랑 50’에 선정, 5개월 기다려야 예약
페비켄의 손님들은 파티에 초대받는 듯 식사를 즐겼다. 자리에 앉기 전 1층 로비에 모여 삼삼오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말린 돼지피 조각으로 감싼 송어알처럼 처음 맛보는 애피타이저는 자연스레 공통의 화제가 됐다. 이후 4개의 접시가 나온 뒤 비로소 2층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 나온 음식은 가리비였다.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짝짝 박수 소리가 났다. 닐손이 홀 가운데 서서 요리를 설명했다. 노르웨이 인근 해변 트론헤임에서 잡은 것으로, 손으로 먹으라고 했다. 마시멜로 같은 쫄깃함, 바닷내음에 달콤함이 섞인 국물에 감탄사가 나왔다. 이어서 삭혀 먹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홍어를 부드럽게 쪄서 내왔을 땐 입이 딱 벌어졌다.
요리들은 대부분 한두 입만 먹으면 접시가 비워지는 소량으로 모두 20가지가 나왔다. 그중엔 나름의 ‘스토리와 재미’도 있었다. 가령 수북한 풀잎 속에 빨간 무가 숨겨져 있는 요리는 지난해 가을 낙엽을 모아 말렸다가 함께 찐 것. 숲 속에서 먹을 것을 채집하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의미였다.

코스 중간에는 셰프의 퍼포먼스까지 등장했다. 사골을 톱으로 잘라 그 속의 내용물과 국물을 생고기와 섞어 즉석에서 차려줬다. “음식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서빙을 더한다”는 그의 설명이 새삼 떠올랐다.

닐손은 ‘뉴 노르딕 퀴진’의 장점이자 특징을 ‘도전’으로 꼽았다. “사계절 내내 레몬을 살 수 있다면 창의력이 생기겠나. 레몬이 없다면 대신 신맛을 내려고 다른 것을 연구해 볼 것이다.”

그는 서울에 오면 무엇보다 발효음식과 사찰음식을 눈여겨볼 생각이다. 지난해 방한한 프랑스 셰프 파스칼 바보(Pascal Barbo)가 한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줘 기대가 크단다. 그러면서 “도쿄 쓰키지 시장보다 낫다는 노량진 수산시장도 꼭 들러볼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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