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의 책과 세상] 산골소녀 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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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은사/나의 아버지//그림을 가르쳐주고/시를 가르쳐주고/소설 쓰는 것도 가르쳐준/나의 아버지" ( '아버지' 전문) .

꼭 1년 전에 나온 단행본 『열 여덟 산골 소녀의 꽃이 피는 작은 나라』(신풍) 에 나오는 영자 양의 짧은 시다.

물론 시에 나오는 아버지란 지난 2월 강도에게 살해된 이연원씨를 말한다.

영자양의 책에 따르면, 산에서 약초 캐고 밭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보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책 읽고, 글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의 공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91쪽) 는 영자양의 말은 그 직후의 고백이다.

강원도 두메산골의 노인인 영자양 부친이 『주역』 등을 읽었다고 하지만 뭐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겠지만, 이씨는 16세 딸 아이에게 한학(漢學) 과 함께 현대소설 창작까지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일주일을 다니다 자발적으로 그만 둔 딸에게 구광본의 『검은 길』 등 작품을 앞에 놓고 소설 창작의 기본을 일러준 그는 글쓰기를 권유했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에서 얻은 영자양의 깨침은 '삶과 문학의 일치' 를 겨냥해온 리얼리즘 문학의 핵심에 육박한다.

"아버지가 나에게/삶의 하나 하나가/시가 된다면서/일기도 시를 만들라고 하네…" ( '일기로' 앞부분)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얻은 생각들과 산골생활을 진솔하게 담은 지난해 첫 책, 그러니까 TV로 알려지기 전후에 내놓은 기록은 제도권 교육을 받은 서울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거짓없는 순박함과 속 깊은 깨침 때문이다. 이를테면 글과 함께 자신이 즐겨 그려온 그림인 관음보살상은 양성구유(兩性俱有) 의 조화된 모습이라는 관찰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의젓한 발견도 보인다.

"나는 해보다 달과 더 친하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내 체감온도에 맞게 전달한다. 주역, 달, 음력 등은 모두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이다. 내가 제도권 안에서 남들 사는대로 살지 못해서 그런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싫지 않다. " (101쪽)

그 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됐고, 본디 불교를 믿었던 딸은 비구니가 된 가슴아픈 패가(敗家) 의 사연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들 앞에 다시 부녀의 유고시집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신풍) 가 선보였다.

혹시 대필(代筆) 이 아닐까, 순수를 팔아보자는 상업주의 출판물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시집을 보면 그런 생각이 근거없음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부녀가 함께 내놓는 육성은 도회지의 어느 누가 흉내낼 수 없는 종류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거칠거나, 아니면 영악해진 우리 시대에 너무도 귀한 이들의 감성은 그래서 두가지 느낌으로 연결된다.

우선 하나는 제도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깨비인가 하는 점이다. 대학 나오고도 자기 생각을 담은 글을 제대로 쓰는 이가 많지 않다.

한데 영자양과 그의 부친은 시집을 통해 자연에 안겨 살아온 사람들의 깨침을 위력적으로 전하고 있다. 또 하나는 도시 혹은 서울이라고 하는 시멘트 공간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삶의 정글인가 하는 자탄이다.

강원도의 부녀를 망가뜨린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공룡 서울' 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고시집은 아마도 '백조의 노래' 일게다. 서울을 살만한 삶의 공간으로 바꿔달라는, 그래야 사람들이 상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역설적인 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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