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LG정유 첫 준법감시인 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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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칼텍스정유 전략구매팀의 金모(35)과장은 5일 납품업체 직원이 한사코 10만원권 상품권을 두고 떠나자 부문장인 朴모(50)상무에게 사내 메일을 통해 처리방법을 문의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준법감시 프로그램' 에 따른 것이다.

朴상무는 "해당 업체 대표이사에게 정중한 내용의 반품 서신과 함께 반송확인서를 보내라" 고 답했다.

이 회사처럼 금품 수수나 법규 위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도 경쟁력이란 판단에 따라 내부 준법감시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 확산되는 준법감시 제도=LG칼텍스정유는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들의 이기주의가 거세지고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심해지자 미국 등 선진기업처럼 직원 스스로 관련규정을 지키고 감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거래상의 금품 수수뿐 아니라 성희롱.영업상의 비밀유지 등에 대해서도 분명한 세부규정을 만들고, 회계.환경.공정거래 관련 법규의 준수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철저히 감시토록 했다.

LG는 이를 위해 사내 업무에 정통한 기획재무본부장 나완배 부사장을 '준법감시인(Corporate Compliance Officer)' 으로 임명했다.

이 회사 우성근 기획팀장은 "미국 칼텍스 등에서도 준법감시인은 재무책임자(CFO)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어 부사장이 이를 맡았다" 며 "모든 부서별로 관련 규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LG정유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불공정 거래를 포함해 내부 직원들의 독직.성희롱 등을 막기 위한 윤리경영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세계는 최근 윤리경영실천사무국을, 대한항공은 감사실 안에 별도 인원을 두고 내부비리를 고발하는 창구를 만들었다.

은행권은 지난해 10월부터 준법감시인 제도를 본격 시행 중이다. 대부분 은행이 상무급 임원을 준법감시인으로 임명했으며, 이를 보좌할 준법감시실(부)을 운영하고 있다.

준법감시인은 은행업무를 하면서 지켜야 할 법령과 각종 감독규정을 제대로 지키도록 유도.교육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경우 자금세탁 등 금융기관의 법 위반이 있을 경우 벌과금을 물어야 하고 심지어 금융기관이 폐쇄되는 사례도 있어 준법감시인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 윤리경영도 경쟁력=기업이나 금융기관 직원들간에는 준법감시인의 역할에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준법' 이니 '감시' 니 하는 용어 자체가 샐러리맨들을 범죄인시하는 느낌을 주는데다 아직 경제적 기능이 분명히 입증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 내부의 윤리나 공정거래법 등 법률 준수가 기업의 불필요한 비용지출을 막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부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13~17%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며 "개인적 윤리나 법규 준수는 결국 기업경쟁력으로 연결된다" 고 말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5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공정거래자율준수규범 제정.선포식에서 "정부의 법 집행에만 공정거래 질서를 맡기는 것은 기업에 과징금.소송비용.사회적 이미지 실추 등 유무형의 부담을 초래한다" 며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윤리경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영렬.홍승일.서경호 기자 young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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