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봤니? 팍신팍신 밤고구마! 《고구마는 맛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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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림책!
《고구마는 맛있어》는 한 마디로 그런 책입니다. 그러니 이 책을 보는 기쁨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도 쉽게 알 수 있겠지요.

그림책의 첫 장을 넘기면 울퉁불퉁한 고구마들이 눈앞에 가득합니다. 예쁘게 그리려고 일부러 애를 쓰지 않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고구마입니다. 하긴 고구마를 무엇 때문에 윤기 나고 매끄럽게 그리겠어요? 울퉁불퉁, 거친 그 모습 그대로 이미 정다운 걸요.

자, 이제 한 장을 더 넘겨볼까요? 밭도랑 사이로 연을 들고 달려가는 아이들이 보이네요. 그 뒤에 오빠들을 따라가지 못 하고 울고 있는 진이도 보이고요. 그 아래로 눈길을 주면, 섬세하게 묘사된 밭이 보여요. 그러다 서서히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 무언가를 나르고 계신 아버지가 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계세요. 아마 새참 그릇을 치우고 계신 모양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밭을 중심으로 해서 진이네 식구가 다 나와 있었던 거네요. 그리고 그 위로 간략하게 설명이 보태집니다.

“진이네는 해마다 고구마를 심어요. 할머니의 할머니가 심던 대로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가꾸던 대로 똑같이 고구마를 심어요. 진이네 고구마는 참 맛있어요.”

아,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밭과 사람, 흙과 인간의 관계는 이렇게 명쾌한 것을…. 믿음직스러운 흙, 그 오래된 삶의 터전에서 진이네 가족은 열심히 살아 온 것입니다. 예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구수하고 정겨운 고구마처럼 말입니다.

이 책은 진이네 식구들이 고구마를 심고 가꾸는 과정을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그 정성스런 모습에는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기쁨이 엿보입니다. 작가는 그런 이웃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요. 일부러 예쁘게 그리지도 않고, 일부러 힘겨워 보이게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래서 밭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멀리서 보여주는 그림에서는 모두가 마치 하나의 자연처럼 보여집니다. 그렇게 밭과 잘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노동. 이런 말이 저절로 입가를 맴도네요.

이 책에는 또다른 즐거움 하나가 숨어 있어요. 그건 아름다운 우리말의 '발견'입니다. 팍신팍신 밤고구마, 물컹물컹 물고구마, 퉁가리, 쇠죽, 두엄자리, 텃밭, 개비름, 명아주, 소비름, 바랭이, 두둑, 고구마순김치, 무서리… 아름다운 우리말이 여기저기서 반짝거립니다. 언어의 맛이 살아 있는 이 말들은 입안에서 재밌게, 그리고 신나게 톡톡 터져요.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노력만으로도 이 그림책은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어쩌면 도시의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은 낯설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자연도감을 보는 것처럼 낯선 풍경과 생소한 말들이 탁탁 발목을 잡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한 번, 두 번 다시 읽는 동안 그런 낯설음이 어느새 정겨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마 시골이 고향인 아빠와 함께 이 그림책을 보게 된다면 아빠의 흥겨운 설명을 듣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 책의 말미에는 고구마의 생태와 쓰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눈에 쏙 들어 오는 말이 있어요.

“고구마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귀한 먹을거리랍니다.”

그런데 그런 칭찬은 이 그림책에게도 들려주어야 할 것 같아요.
《고구마는 맛있어》도 그렇게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그림책이니까요.

기분 좋은 인터넷서점 리브로-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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