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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익필 서손녀와 정혼했소” … 허균 3번째 편지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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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허균이 1613년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쓴 편지.

“제가 두 임금을 섬겼나이다.”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 허균(류승룡 분)은 돌아온 광해군(이병헌 분)에게 이렇게 사죄한다. 아편에 중독된 광해군 대신 그를 닮은 천민을 임금으로 세우려 했던 자신의 과오를 두고서다. 개봉 20일 만에 665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광해군 8년(1616년)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버무렸다.

 실제 허균은 어땠을까.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은 정적 의 투서로 1618년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됐다.

 허균의 세 번째 친필 편지가 발견됐다. 허균의 편지는 당시 갖고 있기만 해도 큰 죄가 돼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올봄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을 ‘허균·허난설헌 선양사업회’에서 매입한 것이다. 앞서 발견된 허균의 편지 2통은 1613년 4월 친구인 금산군수 이안눌에게 쓴 것이다.

 새로 발견된 편지는 허균이 1613년 2월에 쓴 것이다. 수신인은 그의 친구로 추정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내가) 구봉 송익필(1534~99)의 서손녀(첩의 손녀)와 정혼했다”는 내용이다. 송익필은 율곡 이이(1536~84)의 친구로, 서인의 대표 학자다. 그의 시집엔 동인의 대표적 인물인 허균이 직접 쓴 비평이 함께 실려 있다. 서인(노론)의 거두인 우암 송시열이 “역적 허균의 비평을 빼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허균이 왜 송익필의 비평을 썼는지가 의문이었는데 이번에 풀렸다는 것이다.

 친구 권필의 죽음을 슬퍼하는 대목도 있다. “석주(권필)의 시편을 펼쳐 읊으니 마치 (그가) 세상을 떠날 때처럼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쓰고 5년 뒤 허균 역시 모반을 꾀한 죄로 서소문 저잣거리에서 처참하게 처형됐다.

 연세대 허경진(국문학과) 교수는 “허균의 1613년은 사실상 공백기였는데 편지가 발견돼 빈칸이 채워지게 됐다”고 말했다. 편지는 강릉에 소재한 허난설헌 생가에서 6일 열리는 ‘제14회 교산 허균 문화제’에서 공개된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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