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무너지는 메이저리그 '신사도'

중앙일보

입력

메이저리그에 신사도가 무너지고 있다.

미프로야구에 있어 신사도는 선수와 관계자들 사이에 불문률 또는 에티켓이라는 말로 불려왔는데 경기 때 선수들간에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스리볼 노스트라익 상황에서 타자는 스윙을 하지 않고 다음 투구 하나를 기다린다든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고 있는 투수에게는 경기 종반 번트를 대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또한 많은 점수차로 리드하고 있는 경기 후반에는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불문률의 하나였다.

이같은 불문률은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와 선수사이에 눈에 안보이는 존중과 신뢰를 쌓을 수 있게 하는 필드의 신사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신사도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선수들 사이에 기본적인 배려와 예의마저 내팽겨쳐 버리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벌어졌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샌디에고 파드리스전. 경기 종반 한때 양팀 덕아웃과 관중석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배어나왔다.

파드리스의 벤 데이비스가 8회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고 있던 다이아몬드백스의 선발투수 커트 실링에게 번트를 대고 1루로 뛰쳐나간 것이다. 마운드에 서있던 실링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고 양팀 덕아웃에도 한순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보다 이틀전에 벌어진 뉴욕 메츠와 시애틀 마리너스전.

메츠가 무려 8점을 리드하고 있던 8회, 타석에 나선 신조 쓰요시가 스리볼 노스트라익 상황에서 방망이를 휘둘러 안타를 만들어냈다. 다음날 마리너스의 투수 브래드 페니는 신조에게 빈볼을 던져 전날 행위를 응징했다.

또 4월초에 벌어진 메츠 대 몬트리올 엑스포스 경기에서 메츠의 릴리프투수 터크 웬델이 엑스포스의 간판타자 블라드미르 게레로에게 등뒤로 날아가는 험악한 볼을 던졌다. 바로 전날 경기에서 게레로가 10-0으로 리드하고 있던 경기 종반 스리볼 노스트라익에서 배트를 휘둘러 중견수 키를 넘기는 장타를 때려냈기 때문이다.

이같이 그동안 선수들간에 암묵적으로 지켜져 오던 불문률이 깨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메이저리그 게임 패턴 자체가 공격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타자들이 대형화하고 파워가 늘어나면서 과거에 비해 대량득점이 일반화되고 있다. 경기 종반까지 큰 점수차로 리드하고 있더라도 도무지 안심할 수 없게 됐다는 것. 7점 내지 8점 이상 리드시 도루를 하지 않는다거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타격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률을 지키다가는 언제 역전을 당할지 모른다.

둘째 세대차다. 젊은 선수들은 오래된 선수들과 달리 기회만 오면 투지를 앞세워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셋째 외국출신 선수들이 증가하면서 메이저리그 문화가 변하고 있다.

남미계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의 불문률을 외면하는 경향이 짙을 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스리볼 노스트라익에서 배팅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률 자체가 없다.

넷째 불문률 자체에 대한 반감이다.

프로스포츠인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와 선수 사이에 눈에 안보이는 배려나 예의는 사치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는 게임의 박진감을 떨어뜨릴 뿐이라는 주장이 최근 세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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