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기업서 떼밀려 살림난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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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제조업체인 현대멀티캡 임직원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기업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를 지켜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환란(換亂)직후인 1998년 3월 하이닉스가 구조조정 차원에서 정보기기사업본부를 떼내 떠밀다시피 독립시킬 때는 서운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독립 19개월 만인 99년 11월에 코스닥에 등록했고, 지난해 말에는 보란 듯이 성남공단에 사옥을 마련했다.

사업영역도 PC중심에서 초박막액정표시화면(TFT.LCD)모니터.서버 등으로 넓혔고, 현대계열사에서 발주하는 PC도 경쟁입찰을 통해 따내는 등 독립 경영체제를 다졌다. 부채비율도 1백55%로 견실한 편이다.

이 회사 김정열 마케팅 팀장은 "지금 하이닉스에 남아 있었다면 다시 구조조정 대상이 됐을 것" 이라며 "매를 처음 맞은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고 말했다.

현대멀티캡처럼 대기업에서 떨어져 나간 종업원 지주회사들이 분가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약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삼성물산의 반도체판매 자회사로 출범했다가 분가한 삼테크는 국내 대표적인 종합정보기기 마케팅업체로 탈바꿈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는 물론 컴퓨터 주변기기.휴대폰 등을 판매해 지난해 2천7백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중견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이 회사 이찬경 사장은 "95년 삼성물산에서 분가했을 때는 은행거래조차 힘들었다" 며 "설계지원을 곁들인 마케팅이 주효해 고정거래선이 크게 늘었다" 고 말했다.

삼테크는 삼성전자 외에 인텔.페어차일드 등 외국 반도체업체의 비메모리 반도체 판매대행을 하고 있고 중국지역 거래업체만 3백여곳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5월엔 코스닥에 등록했으며, 분가 이래 무노조 경영을 하고 있다.

LG전자 금형사업부에서 99년 독립한 나라엠앤디는 지난해 LG전자 납품비중을 매출액(4백3억원)의 절반 이하로 낮췄다.

또 올 들어선 가전금형의 사출제품 생산에 나섰고 자동차 금형은 기아차.현대차 등에 납품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지분의 36%를 갖고 있는 직원들은 "우리가 주인" 이라며 노조 대신 노사 한마음협의회를 별도로 만들어 '노사일체' 경영을 하고 있다.

이 회사 김영주 재무계획팀 과장은 "분가하니까 본사에 내던 경영 분담액이 없어져 제조원가가 낮아지고 경쟁력이 강화됐다" 며 "이달 초 코스닥 등록을 계기로 수출에도 나설 것" 이라고 말했다.

하이마트도 대우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전신은 대우전자의 직영점 형태로 운영했던 ㈜한국신용유통으로, 대우그룹의 영향권에 놓여있던 신성통상.세기물산 등이 대주주였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영업본부 임직원과 경영진간에 대형 할인매장 운영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결국 2천여명의 직원들이 지난해 말 회사 지분을 모두 사들여 하이마트는 종업원지주회사로 거듭났다.

하이마트는 대우전자 제품은 물론 삼성.LG의 가전제품을 한자리에서 견줘 살 수 있는 원스톱 쇼핑체제를 도입해 인기를 모았고, 직영점은 올 들어서만 15개를 새로 개설해 모두 2백40개가 됐다.

이제 하이마트는 국내 가전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대표적인 가전유통업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종업원들이 뽑은 선종구 사장은 "수익성이 떨어진 직영점은 과감히 폐쇄하는 등 내부합리화를 꾸준히 해 무차입 경영기조를 유지할 것" 이라고 말했다.

고윤희 기자 y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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