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까지 참석했는데 … 북 최고인민회의 ‘맹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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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5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6차 회의에 참석해 문서를 살펴보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 25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이 내놓은 비유다. 북한 경제 전문가 조봉현 IBK기업은행연구소 연구위원은 “10년 전 김정일이 내놓은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업그레이드 판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뜻밖”이라고 말했다.

 이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회의 결과는 12년 의무교육 실시 법령 채택과 최고인민회의 직책 몇 자리를 바꾼 것뿐이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석한 회의치고는 맥 빠진 논의였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평가다.

 당초 이번 회의에서는 경제개혁 조치가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김정은이 이른바 ‘6·28 방침’을 통해 새 경제관리 방식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보당국도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노동당·내각으로 이관하고, 협동농장의 분조(分組)를 축소하는 등의 조치를 추진 중이라고 파악했다.

 또 지난달 13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북·중 경협 확대와 개혁·개방 단행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4월 개최에 이어 이례적으로 최고인민회의를 한 해에 두 번 소집하자 북한이 내놓을 경제개혁 조치가 뭘까에 관심이 쏠렸다.

 회의 하루 전에는 로이터통신이 식량 증산을 위한 농업 개혁안을 예상했고, 프랑스의 일간지 르피가로는 “깜짝 놀랄 경제개혁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북매체들도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경제개혁 결정을 예견했지만 북한의 학제 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전한 데일리NK 외에는 모두 빗나갔다.

 일각에서는 경제법령이나 조치를 다루고 비공개에 부쳤을 수 있다고도 본다. 하지만 이번 회의 안건을 의무교육과 조직문제 두 가지로 명백히 밝혔다는 점에서 추가로 ‘깜짝 발표’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통일부 당국자는 “경제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부담을 김정은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최고인민회의에서 공론화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02년 7·1조치도 공식 발표 없이 시행한 뒤 시간이 지나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전해졌다. 또 김정은이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11월 단행한 화폐개혁도 주민 반발로 실패하자 발표나 보도 없이 유야무야됐다.

 교육문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중앙통신은 5~17세를 대상으로 12년제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법령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며 김정은의 ‘은덕’을 선전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북한은 취학 전 1년 유치원 교육과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5년, 초급중학교(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고등학교) 3년 등 12년제 교육제도를 갖추게 됐다. 기존에는 유치원, 소학교 4학년과 중학 6년 등 11년제였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운영을 정상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김정일 시대가 출범한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 이후 통상 연간 한 차례 열던 회의를 김일성 때처럼 봄·가을 두 차례 정기회의를 여는 쪽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주요 회의 때만 출석하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이 매번 자리를 지킨 것도 이런 이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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