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출신인 내가 총독 지낸 건 다문화 포용정책 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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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난민 출신으로 캐나다 총독을 지낸 에이드리엔 클라크슨은 “한국 내 이주민에게도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제26대 캐나다 총독(1999~2005)을 역임한 에이드리엔 클라크슨(Adrienne Clarkson·73)이 한국에 왔다. 남편인 존 랠스턴 소울 국제펜클럽회장과 경주 국제펜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7일엔 한국전쟁 당시 가평전투 현장을 찾아 캐나다군 기념비에 헌화했다. 그는 2007년부터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보병연대 연대장(Colonel-in-Chief)을 맡고 있다.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을 때, 클라크슨 전 총독은 한국전쟁에 대한 유년기 기억부터 풀어놓았다.

 “9살 때였나, 라디오에서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한국이 어디야?’ 그랬죠. 사진으로 보는 한국은 온통 민둥산에 불타는 초가집, 굶주리는 어린이들 뿐이었어요. 그런 한국이 반세기 만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으니, 캐나다 군인의 희생이 값지게 보상받은 셈이지요.”

 캐나다는 한국전에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만7000명을 파병했다. 이 중 516명이 전사했는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가 가평전투였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보병대 군인들도 10명 희생됐다. 이 부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패트리샤 공주(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에 의해 창설된 왕실 군대다.

 이 부대 연대장(종신직)을 영국 왕실이나 연방 귀족 출신이 아니면서 맡은 이는 클라크슨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클라크슨은 홍콩에서 이주한 난민 출신으로 캐나다의 상징적 최고직인 총독 자리에 올랐다. 난민 출신으로도, 아시아계로도 처음이었다. 여성으로는 두 번째 총독이다. 총독은 실질적인 정치 권한은 없지만 영연방인 캐나다에서 입법 승인 등 영국 여왕이 할 일을 대신한다. 캐나다 전군 총사령관 역할도 한다. 중·일전쟁 와중인 1941년 온 가족이 빈털터리로 캐나다에 도착했을 땐 상상도 못했을 자리다.

 “홍콩이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 부모님은 다른 선택 여지가 없었어요. 화마를 피해 적십자에 도움을 청했고, 망명을 받아 준 곳이 캐나다였죠. 부모님의 교육열과 캐나다의 다민족포용정책에 힘입어 기자와 방송진행자, 작가 등의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답니다.”

 자신이 총독 등 주요직에 오른 것도 캐나다의 정책적 고려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필리핀계 이자스민씨가 이민족 출신 첫 국회의원(새누리당)이 된 데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클라크슨은 “낮은 출산율과 경제동력 저하로 고민하는 한국의 미래는 다문화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해마다 18만 명의 이민자를 받는데, 1년 동안 무료 언어연수·박물관 입장 등의 배려를 해줍니다. 한국 역시 이민자의 2세, 3세까지 문화에 동화시키려면 정책적 노력과 함께 상징적인 롤모델을 더 많이 만들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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