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설득에 고개젓는 EU

중앙일보

입력

취임 후 처음으로 14일 스웨덴에서 유럽연합(EU) 정상들과 회담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유럽 순방의 첫 목적지인 스페인에 도착한 뒤 "유럽을 설득하러 왔노라" 고 일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이 그에게 설득당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환경과 미사일방어(MD)문제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13일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에서는 MD 구상이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란 유럽의 의구심이 빗발쳤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협약 대신 기후.환경 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우선 배정하겠다는 부시의 대안도 EU로부터 "지금은 분석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한 시점" 이라고 일축당한 상태여서 미-EU 정상회담도 순조로울 것 같지 않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유럽보다 아시아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의 최근 정책에 대해서도 "미국의 기본전략이 바뀐 게 아니다" 고 유럽을 안심시켜야 한다.

또 유럽에 보다 확대된 자체 방위를 주문하면서도 나토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하겠다는 다소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유럽 철강 수입에 대한 불공정 경쟁 조사 또한 '바나나 분쟁' 이후 가까스로 해빙 분위기를 맞고 있는 양측의 교역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키고 있다. 게다가 다자간 무역협상에 따른 뉴라운드의 출범 일정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폭넓은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최근 부시 대통령이 취임 초의 '일방주의' 강경노선에서 조금 물러선 행보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MD의 경우 "무슨 일이 있어도 강행하겠다" 던 입장에서 "동맹국들과 논의하겠다" 고 양보했으며 대 중국 및 대북 정책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유럽국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 대통령이 유럽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유럽의 신뢰를 회복하고 유럽의 사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