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개사 대상 경영환경 설문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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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에 시달리고 벤처바람에도 소외된 중소 제조업체들 네곳 중 한곳이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고려했을 정도로 기업 의욕이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중에는 다섯 곳 중 한곳꼴로 환차손을 입었고, 판매대금을 제때 못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반기에는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일보와 중소기업연구원이 공동으로 이른바 '굴뚝산업' 으로 분류되는 전통중소기업 2백3개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2001년 전통 중소제조업 경영환경 실태' 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27.5%가 최근 1년간 폐업(10.2%)이나 업종전환(17.3%)을 검토했다고 답했다.

벤처나 첨단업종의 중소기업을 포괄하는 조사는 여러 차례 실시됐지만 전통 중소제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경영환경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고려한 이유로는 대기업 또는 거래기업의 부도에 따른 경영난(17.7%)을 가장 많이 꼽았고 ▶중국산 등 저가 수입품 밀물(17.2%)▶벤처기업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14.8%) 등의 순이었다.

또 30.0%는 전통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족과 오해 등으로 심리적 위축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전통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업종이 다른 산업에 비해 국가경제에 기여(68.2%)하고 있고 '앞으로 3년 후엔 회사를 더 키울 수 있다(70.9%)' 고 응답하는 등 향후 경영 전망에는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에 사업을 확장하거나 다각화하겠다는 응답 기업이 41.4%에 이르렀고 ▶증원(30.5%)▶R&D 투자확대(23.6%)▶사무실 또는 공장부지 확장(15.3%)▶투자유치(17.7%)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답기업의 절반 이상(55.7%)은 하반기부터 경기가 풀릴 것으로 내다봤고, 최근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의 경영상황을 묻는 질문엔 '좋지 않다' (46.0%)거나 '그저 그렇다' (35.9%)가 대부분이었고, 감원.사무실 축소.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단행(44.48%)했다고 응답했다.

◇ 물건 안 팔려 빚 늘어=응답기업의 48.8%가 판매부진으로 상반기 매출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간의 과당경쟁(38.4%)으로 다섯 기업 중 한 곳은 재고가 쌓였다고 응답했고, 정작 물건을 팔고도 돈을 늦게 받거나 아예 돈을 떼이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다섯 곳 중 한곳 이상(26.1%)은 '판매대금 회수지연' 을 경험했고, 17.7%의 기업들은 지난 1년 동안 거래기업의 부도 등으로 대금을 못받았다.

이에 따라 열곳 중 세곳(30.1%)은 빚이 늘었고 네개 업체 중 하나는 매출이 줄어들면서 올 상반기에 '만족할 만한 순익을 냈다' 고 응답한 기업들은 열곳 중 한곳(11.9%)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벤처기업과의 경쟁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한 업체는 6.4%에 그쳐 벤처기업과 전통제조업체간의 제품 판매경쟁은 미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 환율 변동에 무방비=응답기업 대부분은 환율급등락에 거의 무방비였다. 환율변동에 신경은 쓰면서도(41.4%) ▶전담인력을 두거나(3.9%)▶선물거래를 한다(3.0%)는 기업은 극소수였다.

대금결제와 수출입 계약 시기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환(換)리스크를 줄이는 기업(18.7%)도 많지 않았고, 세곳 중 하나는 대책을 아예 세우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다섯개 기업 중 하나가 상반기 환율 변동으로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가운데 18.6%가 1억원 이상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 인건비 부담 커=실업자가 1백만명 선을 오르내리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일손을 구하지 못해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응답업체의 42.4%가 지난 1년 사이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운영자금 중 인건비가 가장 부담스럽다(66.5%)고 응답했다.

기술자 등 전문인력이 필요(36.9%)하지만 인건비 부담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연구조정실장은 "고용비중이 70%에 이르는 전통 중소제조업체 중 상당수가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검토했다는 조사결과는 충격적" 이라며 "중소기업들은 경영정보화를 앞당기고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로 활로를 열어야 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재광 기자 imi@joongang.co.kr>

*** 이렇게 조사

이번 조사는 국가경제에 기여도가 크면서도 벤처 열풍 등에 밀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전통 중소제조업의 실태를 파악하자는 취지로 실시됐다. 중앙일보가 조사내용을 기획하고 중소기업중앙회 산하 중소기업연구원이 설문조사와 분석을 맡았다.

조사는 지난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수도권 소재 부품.섬유.신발.화학업종 등의 중소기업을 상대로 실시됐으며 인터넷.컴퓨터.바이오 등 첨단 업종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사대상 업체는 중소기업연구원이 갖고 있는 중소제조업체 리스트를 활용, 8백개 업체를 선정했으며, 최종 설문에 응한 기업은 2백3개였다. 응답자는 회사대표(27.9%)와 중역(72.2%)등 경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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