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토털 바스켓볼 열풍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창 진행되고 있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는 월드컵의 전초전으로서 세계축구팬들의 관심을 끄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각대륙의 강팀들이 집합했던 이번 대회에서 우리는 현대축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토털 사커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현대 축구의 모습은 뚜렷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지던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수비수의 적극적인 공격가담, 단지 골만 넣는 것이 아니라 앞선의 수비까지 책임지는 스트라이커, 이렇듯 모든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를 함께하는 축구, 그것이 바로 토털 사커의 모습이었다.

이런 토털의 물결은 축구뿐 아니라, 스포츠 전체에서 불고있다. 물론 NBA에서도 토털바람, 즉 토털 바스켓볼은 이미 시작되었다. 특히, 선수들의 역할에 따라 임의로 구분지어놓은 5개의 포지션은 농구의 토털화로 인한 포지션 파괴현상으로 그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

6,70년대까지 신장에 따른 5명의 선수들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누어져있던 교과서적인 농구에서 최초로 포지션 파괴를 선도했던 인물은 1979년 NBA에 발을 들인 역사상 최장신 포인트가드 어빈 '매직' 존슨이었다. 206cm의 장신인 존슨은 단지 포인트가드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수식어가 부족했다. 그는 환상적인 쇼맨쉽을 가미한 절묘한 패스로 팬들을 매료시키는 것 이외에도, 리바운드(통산 7.2개), 득점(19.6득점)에 있어서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특히, 루키시즌 NBA 결승전에 진출, 부상당한 압둘자바 대신 센터로 출전하여 40득점을 올린적도 있었다. 이렇듯 그는 한가지 포지션에만 국한되지 않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수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의 농구는 어떠한가? 183cm의 단신선수가 포인트가드가 아닌, 슈팅가드로서 30점 가까운 득점을 올리고, 스몰포워드 수준의 키인 204~5cm정도의 선수가 센터를 맡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210cm가 넘는 장신들이 가드만큼의 순발력과 패싱을 자랑하는 모습도 흔히 볼수 있다.

먼저, 아이버슨 같은 작은 선수가 슈팅가드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주로 190cm중후반대의 선수들이 뛰는 슈팅가드 포지션에서 분명 아이버슨의 작은 키는 핸디캡으로 적용이 된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그 핸디캡을 무색하게 만들정도의 뛰어난 운동신경이 있고, 작은 선수가 내세울수 있는 최강의 무기인 뛰어난 스피드를 갖췄다.

따라서, 장신선수들이 키와 체력으로 밀어붙인다면, 수비의 문제가 생길수 있지만, 그는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것이다. 또한, 속공에 있어 수비보다 한발 앞설수 있고, 공격해오는 선수보다 미리 자리를 잡을수도 있다. 어찌보면, 이번시즌 포인트가드에서 슈팅가드로 변신에 성공한 제이슨 테리 역시, 아이버슨을 롤 모델로 삼았음은 당연하다.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210cm대의 장신선수들이 마치 가드와 같은 플레이를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케빈 가넷으로 대표되는 이런 선수들의 특징은 ‘키가 클수록 스피드가 떨어진다’ 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탁월한 운동신경이다. 가넷은 센터의 키에도 불구하고 가드만큼 빠르며, 패스에도 뛰어난 감각을 보인다.

토털 바스켓볼로의 변화는 센터진의 신장도 낮춰놓았다. 예전처럼 팀에서 가장 키가 크다고 해서 센터포지션을 보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 알론조 모닝같이 208cm의 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점프력과 근력으로 NBA 최고의 센터에 드는 선수도 있고, 자히디 화이트(206cm)같은 선수는 거대한 몸집을 무기로 자리싸움에서 장신센터들에게 밀리지 않는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신장과 관계없이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고, 농구에 있어서도 신장보다는 스피드를 앞세운 전술이 유행하면서, 포지션의 구분이 점점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이번 드래프트 참가자들의 프로필을 보니, 역시 장신에도 불구하고 가드의 스피드와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음을 알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더욱 스피드있고 박진감넘치는 경기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운동신경만을 앞세운채 화려함만을 좇아 자칫 기본기가 쳐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춘 만능선수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면, 갈수록 포지션의 구분은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나아가서, 아마도 미래의 NBA에는 비슷한 신장을 갖춘 5명의 선수들이 한팀을 이루는 경우도 볼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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