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하락 세계 1위 코스닥의 명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로 ‘다음’이 최근 몇년간 급성장한데에는 코스닥의 공로가 컸다. 1995년 처음 설립되었을 때 다음은 소규모의 컴퓨터 시스템 인테그레이터에 지나지 않았고 전망도 불투명해 보였다. 설립자인 이재웅 사장은 연세대 컴퓨터 공학과 출신의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된 청년이었지만 자금 사정은 형편없었다. 은행들은 건물·토지 등 부동산 담보가 두둑한 대기업·재벌에나 자금을 지원했고 다음 같은 작은 벤처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상황은 악화됐다. 금리는 연 20%로 치솟았고 은행들은 더욱 자금 지원에 인색해졌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하고 ‘지식산업 강국 구축’을 위해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육성책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스닥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신규상장기준 완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는 점이다. 사실 코스닥은 중소 기술업체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기 위해 미국의 나스닥을 본떠 1996년 7월 설립됐지만 그 후 2년간은 거의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그러나 점차 시중금리가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 수단을 찾기 시작했고 증권거래소와 아울러 코스닥으로도 자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고수익을 약속했던 코스닥의 매력은 폭발적이었다.

이런 대세에 편승해 다음도 1999년 12월 코스닥 등록을 감행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공모주는 무려 1백86 對 1이라는 인기 속에서 청약됐고 다음은 1백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주가는 연일 상종가를 기록해 액면가 5백원짜리 주식이 최고 38만6천원에 이르기도 했다. 이 종잣돈은 다음이 주력사업인 인터넷 포털 서비스를 강화하는데 사용됐다. 또 코스닥 등록은 엄청난 마케팅 효과도 가져다주었다. 등록에 관한 기사가 거의 매일 지면을 장식하면서 사용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등록 후 약 3달 정도 지나자 다음의 페이지뷰는 세계 정상인 야후나 라이코스의 국내 페이지뷰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다음은 일일 페이지뷰가 2억1천만에 달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야후에 이어 두번째다. 다음의 가입자 수는 2천6백만명에 달하고 정기 사용자도 1천6백만명에 이르며 시가총액도 5천억원을 능가한다. “코스닥이 없었다면 그렇게 빨리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다음의 CFO인 임방희씨는 밝혔다. 임씨는 또 코스닥이 한국의 재벌위주 경제를 벤처 및 정보통신기술 위주의 경제로 바꾼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사실 코스닥은 세계적으로 미국의 나스닥에 이어 가장 성공적인 기술 신시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년간 코스닥은 중소 벤처기업의 돈줄로서 이들 회사가 한국의 기술발전을 주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기에 코스닥은 투자자에게 외면받는 초라한 시장이었지만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재벌 기업의 심각한 문제가 밖으로 드러날수록 코스닥 기업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돋보였고 이것은 바로 자금의 무차별 유입으로 연결됐다.

1998∼99년 일일 주식 거래대금은 76배나 폭증했고 2000년에도 전년 대비 5배가 증가해 2조원에 육박했다. 이 금액은 세계적으로 나스닥에 이어 두번째다. 시가총액도 1998∼99년 10배나 증가해 한때 1백조원에 달했다. 물론 현재 이 금액은 세계적인 기술주 하락에 따라 거의 반토막이 나고 말았지만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높게 평가된다. “양적인 면에서 코스닥은 나스닥에 이어 세계에서 확실히 두번째”라고 코스닥의 도양근 홍보팀장은 밝혔다. 그는 이제 코스닥의 과제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코스닥의 성장은 거래소 소속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쇠퇴와 맞물렸다. 다음 같은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동안 대우나 현대그룹 같은 초대형 기업이 자금난으로 몰락했거나 몰락하고 있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거래소 시장의 시가총액은 아직 코스닥에 비해 몇배에 달한다. 그러나 거래량과 거래대금에서 코스닥은 거래소를 앞지르고 있다. 거래소의 자존심을 더욱 건드리는 것은 상장기업 수에서 코스닥이 올해 말에는 거래소를 따라잡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다.

현재 코스닥은 6백10여 회사가 등록되어 있고 올해 중 약 2백여개가 추가 등록할 예정이다. 반면 거래소는 7백50여 회사가 등록돼 있다. 지난 한햇동안 상장한 모든 회사가 예외없이 코스닥을 택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물론 코스닥의 상장 요건이 훨씬 관대한 것이 주된 이유다. 등록 요건상 최저 자본금이 거래소는 50억∼2백억원이지만 코스닥의 경우 일반 기업은 5억원, 벤처기업은 제한이 없다. 이익에 있어서도 거래소는 당기순이익이 필요하지만 코스닥은 그런 조건이 없다. 또 투자자들이 코스닥에서 더욱 높은 수익, 소위 ‘대박의 꿈’을 찾는다는 것도 성장 요인이 됐다. 그리고 코스닥은 사이버 거래의 비중이 80%로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여타 시스템에서도 첨단을 자랑한다. 중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코스닥의 성공을 배우기 위해 참관단을 수시로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코스닥의 급성장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무엇보다 시장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1999년 코스닥 지수는 2백35%나 증가해 세계 기술시장에서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 지수는 하락률로 다시 한번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3월 최고 기록에서 12월 최저 기록에 이르기까지 무려 87%가 하락했다. 코스닥의 주식 회전율 역시 세계 최고다.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을 비교하는 이 수치가 나스닥은 3백∼4백%에 지나지 않지만 코스닥은 무려 9백%에 달한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코스닥의 투자자 구성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코스닥에서 거래하는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은 5%에 지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코스닥에서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율이 4%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30%가 넘는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을 갖고 있는 거래소에 비해 시장의 장기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상당한 취약점이다. 또 나스닥이나 거래소에 비해 코스닥은 투자자 보호제도가 미약하다. 아직 단 하나의 등록기업도 코스닥에서 퇴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코스닥에서의 투자 패턴이다. 아직 투명하고 공정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에 주가조작 등의 사건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얼마 전 사법당국에 의해 적발된 정현준이나 진승현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소위 ‘대박’을 추구하는 투자심리를 이용해 교묘히 주가를 조작하고 불법으로 자금을 대출받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이들 젊은 벤처기업인이 그동안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유능하고 식견있는 기업인 행세를 해왔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벤처기업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됐고 이는 바로 코스닥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아직 많은 투자자들이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문제 기업의 퇴출, 공시 및 관리,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감리제도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하루 빨리 결실을 맺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능력있고 양식있는 벤처 기업인과 내실없이 주가 조작을 일삼는 벤처 기업인을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코스닥이 제2, 제3의 ‘다음’과 같은 회사를 육성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이병종 뉴스위크 서울특파원

출처 : 뉴스위크 483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