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체험 기회 뺏는 교육 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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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태
아산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빗물이 빠지는 도랑이 막히거나 운동장 한 켠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 인부를 사서 처리하고, 자기가 사용하는 화장실도 대신 청소할 사람을 사서 맡기는 등 그야말로 교육복지라는 일들이 언젠가부터 학교 현장에서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남학생으로만 편성된 학급에서 실습지를 가꾸던 생각이 난다. 두엄더미 밑바닥에서 잘 썩은 거름을 비료포대에 가득 담아 아버지가 새끼로 싸 만든 멜빵을 메고 등교하던 일, 방과 후 뒷산에 올라 퇴비로 쓸 풀을 베던 행사, 무더운 여름 실습지에서 풀을 뽑던 일, 실외 변소에서 인분까지 퍼 나르던 일, 겨울 난방에 쓸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솔방울을 따러 산에 수없이 올라갔던 일 등, 나는 그런 일을 도맡아 했던 일명 머슴반이 있었다. 거름을 뒤집어쓰거나, 풀 베기에 손을 베이는 것은 다반사고, 친구와 목도(인분통에 긴 막대를 꿰어 둘이 어깨에 메는 것)해 나르다가 막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인분을 뒤집어 쓴 일은 오늘날엔 상상도 못할 일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학생과 학부모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교육의 일부 또는 그 자체라고 동의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땀을 흘리며 주어진 일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당시의 그 어린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근로의 소중함, 협동심, 친구들과의 우정, 어려움을 이기는 극기심, 부지런함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귀중한 품성의 다양한 덕목을 배웠다고 말한다면 누구도 적극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체험에서 습득되는 덕목들이 오늘날에는 방법론적인 면에서 모두 바뀌어야만 하기에 교사들은 새로운 전문성을 요구받게 되고 아울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오늘날 우려되는 바와 같이 지나치게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하고, 교육복지를 필요 이상으로 남발한다면 체험의 기회는 줄어들 것이고 적절한 통제의 수단은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최근 미래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 차원에서 강조되는 교육의 화두로는 ‘다문화 사회, 글로벌 멤버십, 리더, 창의 인성, 창조적 인간’ 등의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풀 한 포기 뽑아보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려보지 못한 사람이 근로의 소중함을 알까? 자기 주변을 청결히 해보지 않고 자기가 배설한 화장실 청소도 안 해본 사람이 다문화를 아우르고, 글로벌 멤버십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다양한 고통을 씻어줄 수 있을까?

이러한 사례의 비유처럼 체험적 활동을 박탈해가는 상황에서 품성과 능력을 제고하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우리 교육자에게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앞서 예를 든 바와 같이 인권과 복지라는 두 가지만 보더라도 우리가 추진하는 교육의 과정에 많은 제약과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미래 인재의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 ‘창의·창조’ 라면 덕목은 아마도 ‘인성’ 또는 ‘창의·인성’ 이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미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인권과 복지를 탓하는 논쟁과 구태의연한 교육방법은 이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생들에게 창의·창조·인성 등의 능력과 덕목을 요구하기 전에 교육자들부터 이런 덕목을 갖추고 각고의 노력으로 이 시대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홍순태 아산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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