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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복지 선진국 정답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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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박홍재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
사회복지학

요즘 한국에서는 복지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고 한다. 나라 밖에서 보니 내심 반가운 일이면서도 늦은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에서 일고 있는 복지 논쟁의 이념적 전제는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서구의 선진 복지국가들을 모방해 뒤따르려는 꿈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이 본받을 만한 복지 선진국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이다. 복지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복지제도는 애당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개발되고 발전됐다. 복지는 지극히 지역적이며, 문화적인 면이 강한 사회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 배울 만한 복지제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선진 국가들의 사회적 문제들을 먼저 살펴보고, 그 문제에 대응하는 제도들을 배운다면 그야말로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뉴질랜드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겪어 왔던 사회적 문제들을 현재의 한국 실정에 맞춰 전망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선 향후 수년 이내 아동학대 문제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가족과 교육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배경에 가려져 등한시돼 왔다. 하지만 이혼과 재혼가정의 증가 등은 가족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아동학대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서양에서 아동학대 문제는 이혼의 증가로 인한 가족 형태의 변화에 따라 급속히 증가했다. 뉴질랜드에서 동양적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족공동체회의와 같은 제도는 아동학대와 청소년 문제에서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둘째, 이민·난민 또는 외국인 노동자 등과 관련된 문제들은 한국의 사회복지 분야에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의 국가 간 이주는 상품이나 문화의 국가 간 교류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거주민들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전락하기 쉽고 그들에 대한 인권 및 정의는 사회 통합의 실현에 중요한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사회복지는 남북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곧 북한 이주민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뉴질랜드나 호주 등 이민으로 국가를 이루는 나라들로부터 그들이 겪고 있는 소수민족의 문제와 해결책 등을 잘 살펴보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노인문제와 자살 등 정신건강 문제 등 사회복지 이슈는 끝이 없다. 복지 이슈는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응전의 대상이 돼왔다. 이는 곧 복지가 수당이나 경제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퍼주기식’ 기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지구상에 복지 선진국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며, 소외된 계층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복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온전히 뒤따를 만한 복지 선진국은 단연코 없다. 단지 앞선 나라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맞는 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 복지 선진국을 이루어 가는 길이다.

 에치오니(Etzioni)라는 학자의 말에 몇 자를 더해 본다. “동양은 끝없이 서양을 배우려 하고, 서양은 늘 동양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다.” 동·서양이 어우러진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복지제도를 발전시켜 가는 것은 우리 세대의 엄연한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것은 색다른 복지제도를 찾으려 함이 아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려 함이다. 그것은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이다.

박홍재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 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