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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혼전동거… 드라마 성역깨기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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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매체라는 특성 때문에 같은 영상 매체인 영화에 비해 소재나 표현 방식에 한계가 있다.그래서 사회의 변화에 둔감한 보수적 매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소재들을 끄집어 내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특히 남녀관계에 있어서 이른바 ‘성역(性域) 깨기’를 시도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끈다.

우선 드라마 같은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KBS2 다큐드라마 '인간극장' (밤 8시50분) 은 11일부터 성전환자 하리수를 다룬 '그 여자, 하리수' 를 5부작으로 방송한다. 영화 '노랑머리2' 의 주인공을 맡은 하리수는 TV 광고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곧 가수로도 데뷔한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3~4분씩 흥미 위주로 다룬 적은 있지만 그녀의 가족사와 사연을 직접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방송사의 시사토론 프로인 '시사난타 세상보기' 에서 지난달 14 일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문제를 다뤘을 때 홈페이지에는 "아이들이 볼까 겁난다. 성전환 문제를 TV에서 중요하게 다룰 수 있는가" 라는 비판이 일부 게재될 정도로 아직 성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 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인간극장' 의 김용두 PD도 "기획단계에서 방송 소재로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 내부 토론을 거쳤다" 며 "예전 같았으면 엄두도 못냈을 기획이었다" 고 말했다. 김PD는 "성전환 자체를 호기심 차원에서 부각시키지는 않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의 경우 올해 초 MBC '아줌마' 가 여성의 당당한 홀로서기와 이혼 후의 긍정적 삶을 다룬데 이어 KBS '푸른안개' 가 쓸쓸한 40대 중년남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길을 부인과의 별거로 제시함으로써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방영 중인 MBC 주말극 '그여자네 집' 은 주인공인 영욱(김남주) 과 태주(차인표) 가 혼전임에도 주말마다 태주의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면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어도 둘이 함께 한 잠자리를 회상한다거나 영욱의 속옷이 태주의 집에 있는 장면을 스치듯 처리하며 사랑하는 미혼 남녀가 정기적으로 잠자리를 갖는 것을 자연스런 것으로 묘사했다.

MBC 일일극 '결혼의 법칙' 에선 연하남 연상녀 커플(김진.박상아) 이 등장해 세간의 시류를 반영하고 있다. KBS2 월화드라마 '비단향꽃무' 가 미혼모(박진희) 를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다.

물론 삼각관계의 갈등을 위주로 한 멜로물이나 트렌디 드라마가 시청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림잡아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영화관객 1백만명과 맞먹는 수치임을 떠올리면 이들 드라마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푸른안개' 의 이금림 작가는 "실제 상황은 드라마가 표현하는 것의 수백배 이상일텐데도 유독 TV가 변화된 남녀관계나 성적 표현을 담으면 시청자들이 불쾌해 한다" 며 "작품이 진정성을 추구한다면 다루지 못할 소재는 없다" 고 말했다.

이같은 TV 프로그램의 변화는 TV 평론, 특히 드라마 평론가를 양성해 드라마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셰익스피어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TV드라마 작가가 됐을 것" 이란 방송계의 속설처럼 드라마가 남녀관계에 관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이것이 건강한 토론을 낳는다면 웬만한 교양 프로그램 이상의 뛰어난 교육적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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