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모(38)씨는 월급이 180만원인데 매달 236만원을 쓴다. 두 자녀의 어린이보험 등을 포함해 보험료로만 90만원이 나간다. 연 11.4% 금리의 마이너스 대출 800만원을 포함해 대출 잔액 1300만원을 고려할 때 과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작 박씨는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른다. 그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려고 주변에서 좋다고 권하는 보험에 가입하고 돈이 부족할 때마다 쉽게 빌릴 수 있는 마이너스 대출을 이용했을 뿐이다. 보험료를 29만원으로 줄이는 등 재무설계를 다시 했더니 박씨 지출은 180만원까지 줄었다.
금융회사가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한 재무설계 서비스를 우후죽순처럼 내놓은 탓인지 ‘재무설계=재테크’라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은 저소득층이야말로 재무설계가 꼭 필요한 계층이다. 고액 자산가나 중산층보다 재무설계 상담 후 효과는 더 즉각적이고 크다. 한국 FP협회가 2009~2010년 서울시와 함께 저소득층 1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상담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FP협회가 이 중 251가구의 현금흐름을 분석한 결과 3개월 만에 지출은 크게 줄고 줄어든 지출만큼 저축이 늘었다.
포도재무설계가 2008년 보건복지부와 함께 과다 부채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부채클리닉 서비스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월평균 대출상환자금은 109만원에서 64만원, 소비는 138만원에서 121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렇게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던 데는 저소득층 가계의 근본적 문제가 저소득 자체뿐 아니라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꿔줬더니 재무상태까지 덩달아 좋아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크게 다섯 가지 문제를 꼽는다. 첫째, 소득보다 더 지출한다. 둘째, 불안감에 무분별하게 보험에 많이 가입한다. 셋째, 금융상품 지식이 없다. 넷째, 습관적으로 고금리 소액대출을 한다. 다섯째, 조급증에서 오는 한탕주의 투자를 한다. 거꾸로 말해, 이 다섯 가지 습관을 고치는 게 저소득층 재무설계의 기본 방향이다.
조철호 에이플러스에셋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는 “저소득층은 소득은 적은 데도 지출을 줄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버는 게 적으니 소득보다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다며 과다한 지출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적은데도 사교육비 등에 과도하게 많은 돈을 쓰는 것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 미래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보험을 과도하게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설계사가 권하기만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요 없는 보장보험까지 가입한다. 금융정보 부족은 저소득층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서울 중구에 사는 김모(42)씨는 각기 다른 은행에 가입한 청약저축통장이 3개나 됐다. 권유받을 때마다 중복 가입한 것이다. 박현숙 대한생명 CFP는 “몇 년 전 ‘(일반 수시입출금 통장보다 고금리인) CMA통장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던 저소득층 상담자가 기억난다”며 “당시 크게 유행하던 그 흔한 CMA통장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습관적인 고금리 소액대출도 저소득층이 안고 있는 큰 문제다. 고금리라 가급적 자제해야 할 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소액대출을 저소득층은 습관적으로 한다. 고금리 대출이 반복되면서 대출상환 부담은 점점 늘어나 결국 빚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대출 리모델링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다.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초고금리 사채를 우선 상환하고 카드론→신용카드 현금서비스→마이너스 통장 순으로 대출을 갈아탈 것을 권한다.
조급증은 저소득층이 맞닥뜨리는 또 하나의 적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대박’을 꿈꾼다. 그러나 여윳돈이 없는 상태에서 원금을 잃으면 타격이 크기 때문에 고위험 투자는 자제해야 한다. 이근혁 부자마인드연구소장(CFP)은 “저소득층에게 주식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저축을 권했다. 그는 또 “저축을 시작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만기까지 유지하고 당초 정했던 용도 외에는 만기 후 목돈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