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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뮤직비디오 사전 등급분류 바람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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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뮤직비디오에 대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사전 등급 분류 제도가 지난달 시행에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뮤직비디오가 선정적·폭력적이어서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을 반영해 지난해 12월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가요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학부모단체와 음악유통업계, 양쪽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청소년 성상품화 조장 막아야 한다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대표

1980년, 당시 15세의 어린 모델 브룩 실즈가 청바지 모델로 등장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셔츠 단추를 반쯤 풀어헤친 섹시한 연출과 “캘빈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광고 카피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해당 광고사는 미성년자를 모델로 10대 매춘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미연방수사국(FBI) 수사까지 받았고 여론의 질타도 받았지만 정작 그녀가 입은 청바지는 한 달 평균 200만 장 이상 팔렸다.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뮤직비디오가 바로 이런 마케팅을 구사한다. 방송사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뮤직비디오는 “얼마나 야하길래” “○○베드신” 등의 자극적인 문구로 폭발적인 인터넷 조회수를 기록한다. 이처럼 우리의 청소년들은 성상품화 경쟁에 노출돼 조련되고 소비되고 있다.

 요즘 우리 단체에서는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선정적·폭력적 영상물을 모니터한다. 뮤직비디오를 본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청소년들을 유흥가에 던져놓은 것 같다”며 경악한다. 한 학부모는 “5세 딸아이가 인기 걸그룹의 허리와 골반을 이용하는 민망한 춤동작을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아이 아빠가 기겁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아동포르노의 88%가 ‘셀카’라고 하지 않는가. 아이들은 인터넷에 아무런 연령등급 표시 없이 공개되는 뮤비 내용을 당연한 것인 줄 알고 따라 한다.

 학부모들이 뮤직비디오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인터넷에서 뮤직비디오는 영화·게임·웹툰과 달리 성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아무런 제약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일상적인 환경에서 무의식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인터넷 뮤직비디오의 등급 분류 필요성을 줄곧 제기해 왔고, 지난해 관련 법이 개정돼 드디어 올 8월 시행에 들어갔다.

 현실이 이런데도 업계는 최근 도입된 인터넷 뮤직비디오 등급제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 ‘음악 산업의 발목을 잡는 제도’ ‘K-POP의 세계화에 역행’ 같은 산업적 자율과 효율성의 논리만 내세운다. 연간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대중문화를 창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사회·공공적 책임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한다.

 포털사이트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뮤직비디오를 재생하면 본 영상 시작 전에 30초 정도의 상품 광고를 봐야 한다. 업계는 뮤직비디오 등급 분류 시행으로 초기 화면에 3초간 등급을 표시하는 것에는 “세계시장에서 웃음거리가 된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광고를 위해서는 군말 없이 몇십 초도 할애하는 자세는 참으로 씁쓸하다. 또한 등급 분류를 두고 업계가 표현의 자유 침해나 검열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등급은 청소년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연령별 내용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가이드일 뿐 공개를 못하게 하는 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음악업계가 자초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계 불황으로 어느 때부터인가 콘텐트의 내실보다 화제성 성인영화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선정적·폭력적인 뮤직비디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도 자정 노력 없이 미성년자의 성적 매력을 부각, 상품화하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 인터넷 뮤직비디오에 대한 등급 분류가 실시된 것인데 반성은커녕 오히려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대표

국경 없는 인터넷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다

김창환
음악프로듀서

한 나라의 희망인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명제를 거부할 수 있는 국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보호의 실효성 측면에서 뮤직비디오 사전 심의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최근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주민등록번호 등 기술적 인증을 통해 시청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 이 때문에 유튜브(Youtube)와 같이 인증 절차가 불필요한 해외 인터넷사이트와 음악사이트가 아닌 포털 등은 그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이미 UCC와 같이 개인이 손쉽게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등록된 제작·배급사와 국내 온라인 음악서비스 사업자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 적용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마저 일으킬 수 있다. 국경도, 국적도 없는 인터넷 환경에서 사전 등급 심의제라는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음란 영상 배포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을 둔 것과 비교해 보면 그 문제점이 선명해진다. 영상물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을 통해 사전에 등급을 부여받지 않은 뮤직비디오 배포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것은 음란물 배포자보다 뮤직비디오 제작자의 죄를 더 중하게 다루는 셈이 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장래 희망 1순위에 가수나 아이돌 스타가 오르는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는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 열정으로 꿈을 이루어 나가는 K-POP 아이돌 스타에 대한 동경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담긴 결과라고 판단된다. 청소년보호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탁상행정의 결과물로 산출된 뮤직비디오 사전 심의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뮤직비디오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인식의 제고 측면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청소년 교육 시스템 및 스스로의 이성에 입각한 자정 능력, 올바른 가치 판단의 기준을 만든다는 본질적 차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미국·일본 등과 같은 나라도 청소년 보호를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심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을 만들고 유통하는 주체들 스스로 유해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경우 경고 문구를 부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조회수 1억 회를 넘어섰다. 지난 7월 중순 선보인 이후 단기간에 달성한 기록이란 점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K-POP 한류를 만들어내고 있는 음악 업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청소년 보호와 K-POP 발전을 함께 이룰 수 있는,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실효성 없는 정책과 규제로는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회에서 관련 법률의 재개정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청소년들의 문화 수용 능력을 감안한 합리적·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길 바란다. 음악업계가 그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이어나간다면 청소년보호라는 사회적 책임은 물론이고 K-POP 부흥이라는 산업적 성과까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김창환 음악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