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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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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450원 대 3900원’.

 이마트가 미국에서 직접 주문·제조해 들여온 베스콜라와 코카콜라의 가격이다. 이마트가 6일 판매를 시작한 베스콜라는 355mL짜리 캔 6개들이 한 박스가 2450원으로 똑같은 용량 코카콜라 한 박스보다 37% 싸다. 이마트 최성재 부사장은 “고객들이 많이 찾는 콜라·사이다 값이 최근 모두 오른 점을 감안해 ‘반값’ 콜라를 선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콜라에 이어 연말까지 가격을 많이 낮춘 탄산음료·과일주스·비타민음료 등을 잇따라 출시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베스콜라를 세계 최대 음료업체인 미국 코트와 공동 개발했다. 올 초 이마트와 처음 마주 앉은 코트 측은 캔 6개 한 박스에 2600원을 불렀다. 이마트가 당초 염두에 뒀던 코카콜라의 반값인 2450원보다 150원이 더 비쌌다. 이마트 이선근 바이어는 “150원을 깎기 위해 15차례 이상 코트 공장을 찾았다”며 “한 번 방문에 10원씩 깎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향후 음료 개발을 코트에 맡긴다는 조건에 동의를 받아냈다.

 대형마트·편의점·인터넷쇼핑몰 같은 유통업체 사이에 가격파괴 상품 개발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대형마트 매출이 줄어들 정도로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서도 유독 가격 파괴 상품만큼은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유통업체들이 더 싼 상품을 찾아 국내 방방곡곡, 나아가 외국까지 누비고 있는 것.

 롯데마트에서 포장김치 중 부동의 판매 1위를 기록 중인 ‘통큰 김치’는 가공식품 바이어와 중소기업 간 3개월의 협업 끝에 탄생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4월부터 김치 제조업체를 약 한 달간 수소문한 끝에 충북 제천의 들빛김치라는 중소기업을 찾아냈다. 담당 바이어는 제천 공장 인근이 배추 산지라는 점을 확인하고 각 배추밭 주인을 찾아다니며 사전재배계약을 체결했다. 출시된 통큰 김치는 매월 1만2000개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격파괴 상품은 판매율에서 다른 상품을 압도한다. 이마트가 올 4월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온 9900원짜리 청바지 37만 장은 2주 만에 매진됐다. 국내 1위 브랜드 청바지의 연간 판매량(40만 벌)에 거의 맞먹는 양을 2주 만에 팔아 치운 것이다.

 편의점 CU(옛 훼미리마트)가 자체 기획해 가격을 낮춘 고구마칩·양파깡 등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87% 증가했다. 다른 일반 상품(16%)보다 판매증가율이 5배 이상 높다. 옥션이 대폭 할인한 가격에 내놓은 TV와 프린터·에어컨 등 ‘올킬’ 시리즈는 모두 완판됐다. 옥션의 김기범 마케팅 이사는 “가격파괴 상품은 경기침체로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유통업체의 유일한 탈출구”라며 “미끼상품 역할까지 해 다른 카테고리의 상품 매출까지 견인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올해 말까지 판매하는 가격파괴 상품 종류를 현재의 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고객들이 많이 찾는 상품 가운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판단하는 것들이 타깃이다.

 가격파괴 상품 구매는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 대형마트가 연초에 내놨던 자전거는 조립 불량과 제동장치와 안장이 흔들리는 결함이 발견돼 리콜됐다. 또 다른 대형마트가 판매한 스낵에서는 기준치의 4배 이상 초과하는 세균이 검출돼 판매금지 조치됐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한정판매하는 가전제품의 경우 부품이 부족해 애프터서비스(AS)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며 “가격 파괴 상품을 살 때는 가격뿐 아니라 AS나 품질보증기간 등을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파괴 상품

유통업체가 제조사를 직접 찾아내 함께 원가 절감 아이디어를 내고 유통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춘 상품이다. 유통업체가 직접 발주하는 만큼 제조사는 따로 광고와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돼 제조 원가가 적게 든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상품별로 기존 상품보다 25%에서 최대 80%까지 싼 가격의 상품에 가격파괴를 알리는 고유한 브랜드를 붙이고 있다. 이마트는 ‘반값’, 롯데마트는 ‘통큰’, 홈플러스는 ‘착한’, 옥션은 ‘올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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