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선 접는 화력발전 대기업들 삼척서 수주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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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삼척으로 몰려가고 있다. 화력발전소를 짓기 위해서다. 공해 문제로 선진국에선 퇴물이 돼 가고 있는 화력 발전이 돈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력난이 빚어낸 역설이다. 원자력에 대한 불안은 커졌는데 마땅한 대안은 없는 전력 수급 체계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동부그룹 계열사 동부발전삼척은 7월 말 지식경제부의 ‘발전 사업자 공모’에 신청서를 냈다. 발전소와 부대시설 등을 포함해 총 14조원을 투자해 강원도 삼척시에 석탄화력발전소 2개를 짓겠다는 내용이다. 동양그룹의 동양파워도 11조원을 투자하겠다며 응모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고향이 삼척이다. 동양시멘트는 본사가 삼척에 있다. 삼척과 연관된 이들 두 회사뿐 아니다. 포스코에너지와 STX에너지·삼성물산(건설부문)도 뛰어들었다. 5개 사가 발전소 건설과 부대 단지 등에 투입하겠다는 사업비만 39조원이다. 김영춘 삼성물산 인프라개발본부 부장은 “ 심각해지는 전력난 때문에 건설회사를 거느린 대기업들이 새 블루오션이라며 화력 발전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3~2027년)’을 확정하고 삼척 등의 화력발전소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대기업들이 화력 발전에 몰리는 건 우선 돈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화력 발전은 싸게 생산한 전력을 비싸게 팔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한전은 1㎾h당 평균 67원을 주고 자회사의 석탄 화력 전력을 사왔다. 원래 가격은 133원이지만 발전소에 너무 많은 이익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할인 구매를 한 게 그 정도다. 그러나 민간 사업자에 대해선 이런 규정이 없다. 한전이 제 값을 주고 민간업체 전력을 사오려면 1㎾h당 133원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기존 가격의 두 배다. 100만㎾ 규모라면 1년치로 환산해 약 1058억원. 이번에 기업들이 신청한 발전소 규모가 200만~400만㎾이므로 단순 계산하면 한전 자회사보다 연간 500억~2000억원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다. 발전소 하나 지으면 수명이 다하는 20~30년간 안정적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구조란 얘기다. 정부는 특혜 시비를 우려해 민간 발전소가 생산한 전력도 한전 자회사처럼 싸게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세부 기준은 정해진 게 없다.

 화력 발전이 틈새시장으로 각광받는 건 최근 몇 년 새 전력난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애초 2001년 전력 산업 민영화로 민간에 화력 발전을 개방했지만, 민간 참여는 지지부진했다. 당시는 전력 생산이 비교적 넉넉해 큰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10년이 흐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값싼 에너지가 된 전기로 에너지 수요가 몰렸다. 정부의 예측을 크게 뛰어넘는 속도였다.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3차 전력 수급 계획’에선 2020년 전력 최대 수요를 7181만㎾로 잡았지만 이미 지난 8월 6일 7429만㎾를 기록할 정도였다. 최근 5년간 최대 수요는 15% 늘었지만, 발전소는 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 수급 예측이 빗나간 데다 값싼 전기요금이 전력난을 부추겼다”며 “ 급한 수요를 충당하려면 화력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소 증설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것도 화력 발전엔 기회가 됐다. 정부의 전력 기본 계획은 현재 전력 생산의 34%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2030년 60%까지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가 제대로 달성될지 불분명하다. 이종호 한국수력원자력 기술기획처장은 “동일본 대지진의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로 인허가가 늦어지고, 지역 주민과의 협의 등으로 2013~2027년 준공 예정인 원전 10기도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신재생·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도 쉽지 않다. 워낙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관섭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은 “부족한 전력 공급을 한전 자회사 등 공기업이 모두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6차 전력 계획에선 민간 사업자 선정이 늘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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