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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돌아가는 오빠가 물었다, 스파이 돼줄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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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화 ‘가족의 나라’에서 25년 만에 북한에서 일본에 온 오빠(왼쪽에서 둘째, 아라타)가 여동생(왼쪽, 안도 사쿠라) 등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그에게 즉시 귀국 지시가 내려진다. [사진 Star Sands]

재일동포 양영희(48) 감독의 ‘가족의 나라’가 일본영화를 대표해 내년 2월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된다. 한인 여성 감독의 작품이 일본영화의 ‘얼굴’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달 일본에서 개봉한 ‘가족의 나라’는 올 초 베를린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 연맹상을 받았다. 몬트리올·부산 등 해외영화제 12곳 출품도 결정됐다.

 영화는 1960~70년대 북송사업(조총련계 동포들의 북한 귀국사업)으로 또 다른 ‘분단’의 삶을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감독 자신의 체험이 밑바탕이 됐다. 북송사업으로 북에 간 오빠(아라타)가 종양치료를 위해 25년 만에 일본에 돌아와 여동생(안도 사쿠라)을 비롯한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작스런 북의 귀국 지시로 일주일 만에 다시 헤어진다는 내용이다. 북에서 온 감시원 역은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맡았다.

 실제 양 감독의 세 오빠는 10대 때 북에 건너갔다. 둘이 북에 생존해 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가 북한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북금지 통보를 받아 양 감독은 북의 가족을 만날 수 없다.

 ‘가족의 나라’는 더 예민한 내용을 다룬다. 오빠가 북으로 돌아가며 여동생에게 “정보수집을 하는 스파이가 돼줄래?”라고 제안하는 장면이다. 양 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망설임 끝에 영화에 담았다”고 했다.

 -왜 망설였나.

 “지금도 입북금지 상태인데 이게 영화로 나가면 북의 가족과 더욱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공론화하면 북이 더 이상 재일동포에게 그런 일 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 내가 거절하자 오빠는 오히려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더 가슴 아팠다. 반북영화도, 친북영화도 아니다.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다.”

 -여동생이 감시원에게 “당신도, 당신의 나라도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마음 속에서 몇 십 년간 되뇌었던 말이다. 영화에서 감시원은 ‘그 나라에서 네 오빠도, 나도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답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곳엔 소중한 내 가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오빠가 헤어지며 여동생에게 “너는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고 당부하는데.

 “실제 일본에 왔던 막내오빠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북한에 갈 때마다 다른 오빠들이 했던 충고다.”

 -여동생이 흐느끼며 오빠가 탄 차를 쫓아가는 이별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오빠와 헤어질 때 울부짖으며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때의 아쉬움을 배우가 대신 표현해줬다. 현실처럼 영화가 끝나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았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스스로 ‘코리언 메이드 인 재팬’이라 부른다. 나도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다. 영화를 하려면 한국 국적이 더 좋다는 아버지(조총련 간부)의 조언을 따랐다. 나 같은 ‘경계인’만의 시각과 감성이 있다. 그게 내 영화의 자산이다.”

◆양영희 감독=1964년 일본 오사카 출생. 재일동포 2세. 도쿄의 조선대(조총련계) 졸업 후 오사카 조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연극배우를 거쳐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데뷔작 ‘디어평양’(2006)으로 베를린영화제(최우수 아시아 영화상) 등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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