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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 파란만장 92년 … 15일 장례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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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 총재가 3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09년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출간 기념회 때의 모습. [중앙포토]

3일 타계한 문선명 총재는 통일교를 50여 년 만에 세계적인 신흥 종교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십 개의 기업을 일군 수완가이기도 했다. 닉슨·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은 물론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 등 당대의 정치권력과 교분을 맺었다.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의형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는 1920년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정주공립보통학교·경성상공실무학교 등을 거쳐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고등공학교를 다녔다.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에 따르면 그는 열여섯 살 때 예수를 영접했다. 장차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맡게 된다는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20대 중반 또 한번의 영적 체험을 통해 통일교의 논리를 가다듬는다. 예수가 이루려다 실패한 이상세계를 지상에서 이루겠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그는 서울 장충단 공원 부근에서 통일교의 전신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세운다. 이후 스스로를 메시아라 칭하고, 60년에 결혼한 스물세 살 연하의 두 번째 부인 한학자(69)씨와 함께 통일교 내에서 신적 존재인 참부모가 된다. 기독교 교리에 가정의 순결, 세계 평화 철학을 보탠 통일교는 빠르게 성장한다.

 기성 교회에 염증을 느끼던 기독교 신자들을 주로 흡수했다. 54년 이화여대의 여성 신학자 김영운 교수가 통일교로 개종한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이 사건은 역풍을 부른다. 통일교를 받아들인 이화여대·연세대 교수·학생 20여 명이 해임·퇴학 처분을 받는다. 문 총재 자신도 이듬해 구속된다.

199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문선명 총재 부부. 왼쪽부터 문 총재, 김주석, 한학자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 [중앙포토]

 그는 이를 계기로 해외 선교에 눈을 돌린다. 58년 일본, 59년 미국에 선교사를 파견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새로운 종교를 갈망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맞물려 차츰 교세를 확장했다. 70년대 중반 4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뉴욕의 43층짜리 호텔 건물을 사들여 통일교 세계본부로 사용할 만큼 교회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도 대규모 합동결혼식, 길거리 모금 방식이 끊임 없는 논란을 불렀다. 공공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독일·영국 등이 한동안 그의 입국을 불허했고, 84년엔 탈세 혐의로 미국에서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그는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통일교 측은 “전 세계적으로 신자 수가 194개국 300만 명, 합동결혼식은 60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5억 쌍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일교 산하 신문사인 워싱턴타임스는 2009년 전 세계 신자 수를 11만 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문 총재는 한학자씨와의 사이에 7남 6녀를 뒀다. 장례식인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식’은 15일까지 13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가평의 청심평화월드센터. 15일에 한해 문 총재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한다. 신도 및 일반인 참배는 6일부터 받는다. 전국 10개 지방 분향소에서는 4일 오전부터 조문할 수 있다. 장지는 가평군 송산리 천승산. 031-589-87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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