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의족’의 역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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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토리우스(오른쪽)가 3일(한국시간) 200m 결승이 끝난 뒤 우승자 올리베이라와 악수하고 있다. 둘의 의족 길이가 확연히 차이 난다. [런던 AP=연합뉴스]

패자의 변명일까, 이유 있는 문제 제기일까.

 런던 패럴림픽 최고의 인기 스타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6·남아공)가 3일(한국시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 남자 T44 200m 결승에서 은메달에 그친 뒤 밝힌 의족(블레이드) 관련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날 경기 내내 앞서나가다 엄청난 속도로 쫓아온 알란 올리베이라(20·브라질)에게 골인 지점을 10여m 앞두고 역전 당해 0.07초 차로 패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채 우사인 볼트 못지않은 관심과 응원을 보낸 8만여 명의 관중 앞에서 생각지도 않은 패배를 당한 것이다. 올리베이라가 21.45초를 전광판에 찍으며 1위로 들어오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환호로 가득했던 경기장 역시 정적에 빠졌다.

 끝내 아쉬웠던 것일까. 피스토리우스는 경기 후 경쟁자들에 대해 의족 길이가 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올리베이라의 경기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훌륭한 선수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다른) 선수들의 의족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길었다. 공정한 경기가 아니었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상대 선수에 대한 불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규정을 통해 선수들이 얼마든지 키를 키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규정에 대해 항의했지만 IPC는 귀를 닫고 있다”고 관리 책임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의 이러한 의혹 제기는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이 가진 탄성 때문에 비장애인 선수들과의 공정성에 의심이 간다며 국제경기 출전을 막았던 전력이 있다. 이후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그의 손을 들어주며 힘겹게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경기력과 큰 상관없다고 결정된 ‘인공 보철물’ 의족이 사실상 경기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스스로 시인한 꼴이 됐다.

 논란이 계속 커지자 피스토리우스는 뒤늦게 “(경기 직후라는) 타이밍에서 나왔던 발언을 사과하고 싶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의족 길이와 관련한) 이슈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AP는 피스토리우스에 대해 “몇 년간 그의 의족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워왔지만 이제 패럴림픽 경기에서 패한 뒤 라이벌의 인공 보철물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런던=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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