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애플, 마법은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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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기홍
부산대 교수·경제학부

‘기술(technology)과 인문학(the liberal arts)의 만남’. 2011년 3월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2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애플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지향점을 이렇게 밝혔다.

 단순히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채 깨닫기도 전에 그들이 원하는 바를 미리 파악해 전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주는 것. 예컨대 ‘더 빠른 말(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말과는 전혀 다른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애플의 비결이었다. 그러니 ‘와’ 하는 환호성은 절로 따랐고 ‘애플 빠’가 만들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단순함 혹은 간결함(simplicity)으로 대표되는 애플 제품의 디자인 역시 ‘가슴을 울리는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애플은 불과 다섯 가지 품목(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맥북·맥피시)으로, 엑손모빌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됐다. 또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모바일혁명의 새로운 시기를 열었다. 정말 위대한 기업이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2011년 10월 잡스의 죽음을 계기로 그 위대함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 ‘애플 빠’는 ‘스티브 잡스 빠’다. 현재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 빠’가 아니라는 것이다. 잡스는 이윤이나 돈보다는 최고의 제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팀 쿡은 스티브 잡스라면 결코 하지 않았던 일-현금 배당·자사주 매입-을 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잡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제품을 바꾸기 시작했다.

  뉴아이패드는 아이패드2에 비해 51g이 무겁다. 해상도가 증가하고 배터리 사용시간이 늘었다지만 잡스라면 결코 무게를 늘리지 않았을 것이다. 601g이라는 아이패드2의 무게는 손목에 부담을 주지 않고 누워서 빈둥거리기에 딱 좋은 무게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곧 출시될 아이폰5의 화면은 기존의 3.5인치가 아닌 4인치일 가능성이 크다. 잡스가 3.5인치 화면에 집착한 이유는 한 손으로 조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이즈이기 때문이다.

 이런 잡스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아이패드 미니가 나온다. 킨들파이어나 갤럭시 노트에 대항하기 위해서라지만 잡스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지금의 애플은 제품과 함께 ‘돈’과 ‘시장 지배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애플 제품은 아이튠스(i-tunes)를 축으로 하는 매우 폐쇄적인 생태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디지털경제의 역사상 폐쇄성은 결코 개방성을 이기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소니의 베타 방식이 마쓰시타의 VHS 방식에 굴복한 것, 애플의 맥 컴퓨터가 IBM 호환 PC에 굴복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잘나간(나가고 있는) 것은 잡스가 가졌던 인간 중심의 철학, 그리고 거기에 열광한 소비자 때문이었다.

 부자가 망하면 삼대는 간다. 스티브 잡스는 죽었어도 애플은 최소 2년은 간다. 하지만 잡스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제품에 대한 철학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애플은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잡스가 살아 있다면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더 치열했을지라도 혁신적인 제품의 출시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줄어들면서(애플 TV 혹은 애플 자동차는 어느 정도 혁신적일까) 특허전쟁을 빌미로 ‘돈’과 ‘시장 점유율’에 천착한다면, 그리고 그 폐쇄성을 유지해 간다면 애플의 마법은 끝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삼성을 특허전쟁에서 이긴 지금 애플은 마법이 스러지기 전 마지막 불꽃을 찬란히 불태우고 있다. 그러니 나라면 지금 당연히 애플 주식을 팔겠다.

김기홍 부산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