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의 무덤 된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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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4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26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008년 말 57조원에 육박하던 해외주식펀드 설정액은 23일 현재 29조원을 밑돈다.

 해외펀드 몰락의 ‘주범’은 중국펀드다. 2007년 초 3000선에도 못 미치던 상하이종합지수는 그해 10월 6000선을 돌파하는 등 100% 넘게 올랐다. 중국 펀드의 수익률 고공행진에 해외 펀드에 대한 비과세 조치까지 시행되면서 중국 펀드로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해에만 16조8830억원이 유입됐다. 투자자들에게 가장 친근했던 ‘신한BNP봉쥬르차이나펀드(봉쥬르차이나)’와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펀드(미차솔)’ 두 개의 설정액이 15조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2007년 10월을 꼭지로 중국 증시는 급락했다.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상하이종합지수는 2000선마저 내줬다. 이후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며 2009년 지수가 3400선까지 회복했지만, 상승 흐름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증시가 고점을 기록했던 2007년에 투자를 시작한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적립식 투자자가 아니라면, 중국 펀드 투자자 대부분은 여전히 원금을 까먹고 있다. 중국펀드의 5년 평균 수익률이 -26%다. ‘차이나펀드’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는 까닭이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에 투자했다면 16%, 국내 채권에 투자했다면 17%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해외 채권에 투자했다면 50%를 웃도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중국 펀드가 시원치 않은 사이 많은 투자자가 등을 돌렸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6조원 가까운 돈이 유출됐다. ‘본전’ 생각에 버틴 이들은 성과가 좋지 못했다. 중국 펀드는 2009년 56%의 성과를 냈지만 2010년엔 수익률이 4%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에는 22% 하락했다. 만약 2008년에 중국 펀드를 환매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다면 60%를 웃도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초 중국펀드가 유망하다고 했던 전문가들도 돌아섰다. 중국 증시의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는 만큼 일단 피하라는 조언이다. 현동식 한국투자신탁운용 상해리서치사무소 소장은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 있는 시그널(신호) 확인에는 아마도 몇 달이 더 걸릴 것”이라며 “중국 증시의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재성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장은 “최근 중국 증시의 가치가 역사적 저점(주가수익비율 10.7배)까지 올 정도로 싸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닥에 대한 확신이 크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무작정 버티기보다는 중국펀드를 절반 정도 환매한 후 최근 회복이 기대되는 북미주식펀드나 해외채권펀드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바닥을 점치기 힘든 만큼 중국펀드에 섣불리 투자해서는 안 된다”며 “혹시 목돈을 투자하겠다면 3차례 정도에 걸쳐 나눠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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