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始於隗<선시어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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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27면

‘매사마골오백금(買死馬骨五百金)’이란 말이 있다. ‘죽은 말의 뼈를 오백 냥을 주고 사온다’는 뜻이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제위(帝位)에 올랐을 때 안으론 내분, 밖으론 제(齊)나라의 침략으로 영토를 적지 않게 빼앗기는 등 국력이 크게 약해진 상태였다. 하루는 소왕이 옛 스승 곽외(郭<9697>)를 찾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인재 등용방법을 상의했다. 이에 곽외가 말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어떤 임금이 천리마(千里馬)를 구하려 천 냥의 돈을 걸었으나 3년이 지나도 천리마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하급 관리가 천리마를 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한데 그는 죽은 천리마의 뼈를 오백 냥을 주고 사왔습니다. 임금이 화를 내자 관리가 말합니다. ‘죽은 말에 오백 냥을 줬으니 이제 곧 산 천리마를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천리마를 팔겠다는 사람이 셋이나 나타났다고 합니다.”

매사마골오백금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하찮은 걸 사서 진짜 얻고자 하는 요긴한 것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뜻이 담겼다. 더 중요한 건 이어지는 곽외의 말이다. 곽외는 소왕에게 천하의 인재를 얻고자 한다면 가까이 있는 늙은 자신부터 우대하라고 했다. 그러면 세상의 인물들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이에 소왕이 황금대(黃金臺)를 지어 곽외를 머물게 하고 그를 사부로 받들었다.

그러자 명장 악의(樂毅), 음양가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 극신(劇辛) 등과 같은 인재가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왕이 이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또 제나라를 상대로 복수도 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외(<9697>), 즉 곽외부터 시작하라는 선시어외(先始於<9697>)란 말이 나왔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잘 챙기면 천하의 인재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라 별 탈이 없을 것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최근 법정 구속됐다. 김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시작됐는데 제보자는 한화증권의 퇴직사원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항상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김 회장의 잘잘못은 차치하고, 우선 가까이 있던 사람부터 잘 챙겼더라면 하는 ‘선시어외’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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