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노다 친서에 함정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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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우리 대통령이 지난 8월 10일 독도를 방문한 데 대해 노다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보낸 친서에 “이명박 대통령의 다케시마 상륙”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항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일본 정부 수반의 서한을 통해 한국의 국가원수를 자극하고 모독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함의를 생각하면 비우호적 언사의 차원을 넘어 도전적 저의마저 엿보인다.

 과연 독도는 일본이 자기네 영토라고 강변할 근거가 조금이라도 있는 땅인가? 1954년 일본 측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최초로 제의한 데 대해 변영태 제3대 외무부 장관이 웅변적으로 반박했듯이, 독도는 일제가 대한제국 침략 과정에서 첫 희생물로 삼았던 바로 그 땅이다. 일본이 러일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영토를 자유로이 이용하기 위해 1904년 2월 한·일 의정서를 체결한 데 이어 그해 8월엔 제1차 한·일 협약을 강요하고 이어 1905년 2월 대한제국의 땅 독도를 불법적으로 편입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렇듯 독도는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에 속한 것이다. 한국이 광복 67년을 맞아 다시금 독립의 의의를 되새기고 있는 이 시점에 일본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부인하는 것은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고 한국의 독립과 주권을 부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50여 년 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은 끈질기게 독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려 했으나 우리 정부는 이를 일축했다. 이후 일본이 여러 차원에서 독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우리 국가원수에 대해 도발적 문구로 문서를 통해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노다 총리는 금번 서한을 발송하면서 여러 가지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우선 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 상대를 과거와 같은 실무 수준이 아니라 일거에 대통령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동 서한을 접수하고 이에 대해 대통령 명의로 공식 답신을 보내면서 그 내용 중 독도에 관한 실질적 언급이 포함된다면 일본은 우리가 독도 관련 분쟁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주요 근거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일본 총리의 이번 서한은 무례할 뿐만 아니라 우리 대통령을 분쟁의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노다 총리의 서한을 대통령에게 상달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것은 맞는 결정이라고 본다. 외교적 예양(禮讓)에 어긋난 문서를 처리하는 데는 통상적 외교관례에 구속될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일본이 독도 문제를 정부 간 의제화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해 왔다. 만약 대통령 명의로 답신을 보낼 경우 국가원수 명의의 최상급 외교문서 형태가 돼 회담 의제화(議題化) 이상의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 선전의 소재로 악용될 수도 있다. 앞으로 일본 총리가 바뀔 때마다 서한을 보내는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의도를 염두에 둔 심사숙고가 요구된다. 지금은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것과 독도 관련 분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보다 세심하고 치밀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한·일 두 나라는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여러 분야에서 밀접한 협조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두 나라가 역사를 바로 보고 배워야 한다. 만약 영토와 관련된 욕심 때문에 역사를 망각하거나 왜곡한다면 그것은 한·일 양국의 협력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일 관계가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 위에 바로 설 때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가 가능할 것이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