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88년,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기생충 박멸하여 선진 올림픽 이룩하자.’ 대학 1학년 때인 1986년 학교 인근 육교에 커다란 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각종 캠페인에는 ‘기생충 퇴치’도 들어 있었다. 당시 기생충 제거 신약 연구를 소개하는 기사(1983년 4월 29일자 매일경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김 박사는 정부가 (신약 개발을) 적극적 지원을 함으로써 오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며….”

 그 시절 우리는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지금 보면 꽤 촌스러운 구호 아래 전 국민이 올림픽 준비를 했다. 도로와 지하철을 새로 놓고, 달동네 무허가 주택을 강제로 헐어내고, 집창촌 앞에 콘크리트 벽을 세우고, 단체로 구충제를 먹었다. 참 요란했다.

 이런 기억은 런던도 올림픽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최소한 도심에는 초고속 인터넷 망이 깔리고,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가 터지게 되리라 생각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런던 시내 도로의 한쪽 차로를 올림픽 관련 차량 전용차로로 만든 것 말고는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지하철 고장도 여전해 주경기장으로 가는 노선도 최근 며칠 새 여러 번 운행이 중단됐다. 길이 아무리 막혀도 차량 10부제나 5부제 같은 것은 고려 사항도 아니고, 공항 입국 심사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방문자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가 내놓은 대답은 “정 급한 사람은 특별입국서비스(180만원의 비용이 든다)를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의 슬로건은 ‘위대한 올림픽의 유산을 남기자’다. 올림픽의 사회 환경 및 기반 시설 ‘업그레이드’ 효과를 기억하는 한국인으로선 그 유산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으로 짐작하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서배스천 코 조직위원회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마음에 간직하는 아름다운 공동의 기억”이다. 1908년과 48년에 두 차례 올림픽을 개최했지만, 한번은 개최 예정국 이탈리아의 화산 폭발로 얼떨결에 떠맡아서, 다른 한번은 2차대전 직후의 식량배급 시절이라 제대로 된 ‘국민적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말 이런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 보겠다는 계산 때문인지 어쨌든 올림픽을 위한 성대한 준비는 없었다. 대신 70일 동안 영국 구석구석을 누빈 8000명의 성화 릴레이, 영국의 문화적 자산을 총동원한 개막식 등 온 국민이 함께 즐기는 일에는 꽤 공을 들였다.

 1988년에서 한 세대가 지나는 2018년 한국은 평창에서 또 한번의 올림픽을 치른다. 이번에는 손님맞이 때문에 온 식구가 긴장하고 피곤한 행사가 아니라 집안 사람들부터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잔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도 그럴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