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전쟁장면 제가 만듭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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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50%에 육박하는 KBS1 대하사극 '태조왕건' . 나주 전투를 비롯, 영토를 둘러싼 후삼국간의 전쟁 장면이 한국 사극의 표현법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조왕건' 의 무술감독 이영수(42) 씨. 바로 그 전쟁 신을 직접 연출하는 사람이다.

무술감독이란 단지 치고 때리고 하는 기술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다. 계통도를 그리자면 무술 연기자-무술지도자-무술감독 이렇게 이뤄진다.

태조 왕건의 전투장면에 동원되는 2백여명을 3명의 무술지도자가 통제하고, 이감독이 전투 장면의 총연출을 맡는 것이다.

"대본에서 전투 장면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불붙은 통나무를 굴릴지 불화살을 쏠지, 성벽에 접근할 때 어떤 방향에서 할 지 제가 결정을 해야되죠. "

그래서 그는 경북 문경과 충북 제천 등지에서 야외 촬영이 이뤄지는 때에는 3~4일간 현장에서 잠을 자며 촬영에 몰두한다.

이감독에겐 칼잡이 두 명이 "챙" "챙" 하며 싸우는 연기보다 군중의 전투신이 더 어렵다. 1:1 격투는 장면 장면을 나누어 촬영할 수 있지만 대규모 전투는 그러기가 힘들다. 성벽위에서 불화살을 맞으면, 맞는 동시에 아픈 표정을 지으며 떨어져야 한다. 화살 명중 따로, 떨어지는 것 따로가 불가능하다.

"촬영 현장에선 저를 아주 독한 놈이라고들 합니다. 사고 위험성이 크다보니 항상 긴장해있거든요.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정신 딴 데 파는 사람이 있으면 욕부터 나올 수 밖에 없어요. "

전투 장면 중 칼에 맞는 모습이나 말에서 떨어지는 동작이 '클로즈업' 돼 나오는 사람이 바로 무술연기자들이다. 병사역으로 동원된 사람의 10%인 20여명 정도. 지시에 따라 '우루르' 몰려다니면 되는 엑스트라와 달리 이들은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야 하고 10m 높이의 성벽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애들이 다칠 때 제일 맘이 아프지요. 아무리 목숨 내걸고 하는 일이라도 자기 몸 하나가 밥줄인데 누가 책임져 주겠습니까. "

사실 그도 무술연기자 출신이다. 열 살 때부터 태권도와 합기도 등을 배우던 그는 이소룡 영화에 빠져들었고 무술과 연기가 좋아 스물한살때인 1981년 KBS 사극 '포도대장' 을 통해 무술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전설의 고향' 에서 장미희나 김혜숙의 대역을 맡기도 했다. 구미호가 나무를 날아다니는 모습 등이 그가 연기한 것이다. KBS '무풍지대' '형사' 등에선 직접 조연을 맡아 잠깐동안 얼굴을 알리기로 했다.

그러다 지난 96년 새로 시작한 '전설의 고향' 에서 처음으로 무술감독이 됐다. 이밖에도 SBS '덕이' 등 미니시리즈 네 편을 맡아 했다.

"무술연기도 제대로 대접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애들이 연습 많이 합니다. 무술연기는 정신력이 기본입니다. 순간의 방심이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거든요. "

무술연기자가 되려면 승마.격투기.정신력 훈련 등 6개월 이상의 기본 연습이 필요하다.

무술 연기의 기본은 떨어지는 연기와 제대로 맞는 척 하기다. 때리기는 그 다음일이다. "진짜 맞은 것 같은 연기" 가 나오는 데만 또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감독의 꿈은 무술 연기자 학교를 차리는 것.

체육관 출신들을 데려오는 현재의 무술 연기자 선발 관행을 뛰어넘어 전문성있는 후배들을 기르고 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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