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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다음에 거지가 왔고, 그 다음엔 중이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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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호 11면

폭우가 그치면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나왔다. 백두옹은 바위 그루터기 위에 엉거주춤 서서 젖은 모시 두루마기를 벗어 짜기 시작했다. 그때 적삼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②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고

-할아버지! 지금 어디 계세요?
“은강이로구나. 인왕산 산책로란다. 비를 흠뻑 맞았어.”
은강이는 백두옹의 고손녀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이 되어 서울에 와 있었다.

-감기 걸리면 어쩌시려고. 모시러 갈게요. 기다리세요.
할아버지를 끔찍이 위하는 은강이는 마지막 조선왕조 인물이 폐렴이라도 걸릴까봐 안달이다. 그는 고스란히 20세기를 관통해왔고 눈과 귀가 흐리긴 하지만 사지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문도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서 보고 컴퓨터도 하며 스마트폰도 쓴다. 나이 먹었다고 못 따라갈 백두옹이 아니다.
털어 입은 옷이 절반쯤 말랐을까. 고손녀가 장밋빛 오픈카를 타고 왔다.

“강남쪽은 비 한 방울도 안 왔어요.”

“그래서 여름 소나기는 소 등에서도 갈린다고 하는 게야. 청와대 앞으로 해서 가자꾸나.”
차에 탄 백두옹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행인들의 이목을 끌며 산길을 내려간 그들은 청와대와 경복궁 사이를 천천히 달렸다.
고려 문종 21년(1067), 이곳에 이궁(離宮)이 설치되었다. 이궁은 임금이 도성 밖에 세운 별궁이다.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그 후원이 되었다. 흥선 대원군은 의욕적으로 경복궁을 재건하지만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1939년 총독 관저가 세워지고 7~9대 총독이 해방 직전까지 사용했다. 1945년 12월, 이곳은 미국 극동군사령부 하지 중장의 관저로 바뀌게 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들어오면서 경무대(景武臺)로 이름을 바꾼다. 경무대는 경복궁의 ‘경’자와 궁의 북문인 신무문의 ‘무’자를 따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할 때까지 12년간 경무대의 주인 노릇을 했다. 제2공화국의 윤보선 대통령은 청와대(靑瓦臺)로 명칭을 바꾼다. 말도 많은 5·16 군사정변(혁명)으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들어오지만 차례로 횡액을 당하여 18년간의 영욕의 세월을 마감한다. 이후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정도령은 正道 걷는 대통령
“은강아, 넌 정도령이 청와대 새 주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
백두옹이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낀 은강이에게 묻는다.

“촌스러워요. 꼼수 안 쓰고 ‘정도를 걷는 대통령’이 ‘정도령’이죠 뭐.”

은강이는 그렇게 내뱉으며 가속기를 밟아 속력을 냈다. 늙은이가 고민하던 걸 한 방에 쿨하게 해결해 버린다.
아, 바로 이거다! 정도(正道)를 실천하는 대통령이 정도령이었다! 정도령은 진인(眞人), 곧 참말을 하는 지도자로 성씨나 성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누가 됐건 심보만 바르면 정도령이 될 수 있는 거다. 이처럼 쉬운 걸 어린 손녀한테서 배운다.

백두옹은 디지털 세대의 순발력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른다. 디지털 시대에는 연륜과 경험이 더 이상 노하우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되레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 단적인 예가 ‘현대판 신’이라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활용능력이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열심히 묻고 배워야 한다. 디지털 기술 활용능력은 정확히 나이에 반비례하니까 말이다.

학문도 그렇다. 물리학이 바뀌면 철학이 바뀌고 신학의 입지가 좁아진다. 철학과 종교는 더 이상 세상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차는 남산 제1호 터널을 통과하여 쏜살같이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압구정로를 거쳐 청담동 집까지 순식간에 주파해 버린다. 말을 타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근대 과학문명은 시간을 단축시키고 공간을 살해해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백두옹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외손자 며느리가 구수한 모카커피를 내온다. 아들딸, 며느리들은 이미 죽었거나 병원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자가 인생의 최종 승자라지만 자식들을 앞세우고 혼자만 오래 사는 건 고독이자 형벌이다. 그렇다고 자살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고종명(考終命)은 오복의 매듭이니까 말이다.

침상에 누워 생각을 달리던 백두옹은 스마트폰을 열어 뉴스를 검색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가 뜬다. 안철수의 고공행진이다. 예상했던 바지만 그래도 놀랍다. ‘운종룡풍종호(雲從龍風從虎)’는 그가 올해 정초에 쓴 휘호다. 주역 건괘 문언(文言)에 다섯 번째 효사인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을 풀이하면서 든 비유다.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좇듯 사람들은 서로 같은 기운과 취향을 따른다. 누가 용이고 누가 호랑이인가. 눈치 빠른 이라면 벌써 알아차렸을 터. 문제는 누가 승자가 되느냐다.

백두옹은 침상에서 일어나 강화반닫이를 열고 오동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는 흑단나무로 깎은 6효 막대와 대나무에 옻칠한 서죽 50개가 들어있었다. 벼슬길이 끊이지 않았던 가문 대대로 물려온 보물이었다. 어지럽던 시절, 선조들은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날 때면 반드시 주역을 활용했다.
백두옹은 지금껏 좀처럼 점을 치지 않았다. 작년에는 단 한 차례도 치지 않았다. 굳이 점을 치지 않아도 기미만 보고 알 수 있는 직관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올해는 한 차례 쳐볼 참이다. 여야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진중하게 물어 보리라. 그리고 은강이 말마따나 정도를 실천하는 대통령이 되도록 도울 참이다.
자본주의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건 모두 천덕꾸러기이자 거지발싸개다. 주역 철학은 곧잘 미신 취급당한다. 동양문화를 이끌었던 철학서가 무지한 점쟁이들의 오남용으로 불명예를 떠안았다. 세종대왕이 아시면 여주 영릉에서 벌떡 일어나실 노릇이다. 대왕은 주역철학을 바탕으로 바른 소리글자인 한글을 만들고 갖가지 제도를 정비했다. 문자가 권력이던 시대에 오직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생각해서였다. 태극(太極:)이 낳은 양의(兩儀:ㅡ,ㅣ)는 함께 모여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된다. 여기에 주역 하도(河圖)의 원리를 곁들여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모음을 얻었다. 자음은 하늘(ㅇ)과 땅(ㅁ)과 사람(ㅅ)의 형상에 구강 구조를 더해 얻었다. 과학적인 문자의 원리에 주역철학이 있었다.

동서양 고전 가운데 주역은 유일하게 디지털 코드로 된 철학서다. 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바코드가 어떻게 고대 사회에서 출현할 수 있었는지 신비하기만 하다. 주역은 디지털 혁명의 선구자다. 온줄(■)과 도막줄(■■)을 여섯 층으로 겹쳐서 64괘를 만들고 그것을 범주로 하여 가치를 모색한다. 2진법을 발명한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 양자역학의 창시자 닐스 보어,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주역을 열독하고 거기서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건 상식이다.

한마디로 주역은 에너지의 흐름을 패턴화한 책이다. 은비학(隱秘學)이라며 신비화시킬 것만도 아니다. 흐름을 알면 예측이 가능하다. 사리사욕 없이 보면 일마다 해법이 있다.

주역에 날개를 단 공자가 일렀던가. “가히 더불어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가히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데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이는 사람도 말도 잃지 않는다”고.

대권 거머쥘 중은 박근혜인가 안철수인가
바야흐로 지금은 백가쟁명이 아니라 천가쟁명, 만가쟁명의 시대다. 말이 홍수처럼 넘쳐난다. 자칫 거기에 휩쓸려 파묻혀버릴 염려가 있지만 이제 나, 백두옹은 말한다. 때가 됐음에 하는 말이니 이는 피할 수 없는 시명(時命)이기도 하다.
꼭 10년 전, “문둥이 뒤에 거지 온다”는 참언(讖言)이 있었다. 나는 같은 문법으로 천명한다. 청와대 주인으로 문둥이 다음에 거지 왔고, 거지 다음에 중이 온다!”

문둥이와 거지가 누구였는지는 천하가 다 안다. 거기 까진 적중했다. 그렇다면 다음에 올 중은 누구인가?

박근혜는 일찌감치 대권 선두주자 자리를 확보한 불세출의 여성 리더다. 그는 중처럼 독신이다. 남녀불문하고 당대 어느 정객이 있어 박근혜의 우아한 풍모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에 필적하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다. 그렇다고 보는 사람의 기세를 꺾어버리는 압인지기(壓人之氣)가 아니다. 부드럽고 조용한 카리스마다. 그는 확고한 국가관과 소신 있는 언행으로 국민적 신뢰를 얻고 있다.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그의 정치적 고향, 영남이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 충청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타관, 호남에서조차 예외가 아닌 듯하다.

이런 박근혜에 맞서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손학규·김두관 후보의 지지율은 미미하다. 현재로선 셋 모두를 합쳐도 박근혜를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 무소속 안

철수 교수의 경우는 다르다. 공식 출마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생각을 정리한 책을 낸 것뿐인데 시민들은 열광한다. TV 예능프로에 출연한 이후 안철수의 지율은 급격히 상승해 박근혜를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문약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 왔던 그는 민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당도 없는 그가 창호지에 물 스미듯 그렇게 시나브로 세를 얻으며 ‘득중(得中)’, 곧 중을 얻었다.

누가 대권을 거머쥘 진짜 중인가? 박근혜인가? 안철수인가? 전환시대의 역사는 결코 수월한 길로만 가지 않는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손학규·김두관 등의 후보군이 경선 레이스를 펼치며 바람몰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승자가 안철수를 등에 업고 가려 할 것이다. 안철수에게는 없는 게 그들에게는 있다. 바로 정당 정치라는 구조다. 개인은 구조를 깰 수 없다. 안철수를 야권 단일후보로 명예롭게 추대할 수도 있겠는데 아전인수식 탐욕의 정치판에서 그걸 기대하기란 너무 이상적이지 않는가. 진짜 중 가리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김종록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밀리언셀러 『소설 풍수』와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바이칼』 등을 썼으며 중앙일보에 ‘붓다의 십자가’를 연재했다. 본지 객원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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