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정은 개혁, 개방·평화로 이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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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2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의 개혁 움직임을 확인해 주었다. 원장은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로 경제관리방식 개편 태스크 포스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으며 당과 군 소관이던 경제사업의 내각 이관과 협동농장의 작업 분조 인원 축소, 기업경영 자율권 확대, 근로자 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장은 그러나 “김 제1비서가 사회주의 원칙 고수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어 근본적인 개혁·개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개혁의 한계’도 지적했다. 한마디로 북한이 현재 개혁조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체제 특성상 개혁이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다.

 김정은 제1비서는 최근 파격적인 행보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 관례상 매우 이례적으로 퍼스트레이디를 전격 공개하고 놀이기구를 직접 타보는 모습도 드러냈다. 군부가 장악한 경제 이권을 내각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반발한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총참모장을 하루아침에 숙청하는 등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일도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이런 행보는 상당한 기대감을 촉발시키고 있다. 오랫동안 외국 유학을 한 젊은 지도자가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낙후하고 침체한 북한 사회를 개혁해 나가고 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런 행보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지 않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 것으로 추정된다.

 원세훈 원장은 ‘개혁 움직임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지만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한다고 해서 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 중국은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꾸준히 개혁을 추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변모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이 초기 개혁 과정에서 ‘사회주의 원칙 고수’를 강조한다고 해서 2002년 7·1 경제개혁처럼 단기간에 무산되는 일이 되풀이될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경제난 극복을 위해 개혁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북한의 개혁은 결국 개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립을 완화하는 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최근 개정한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천명하는 등 오히려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태도는 단기적으로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의 화해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북한 역시 핵 문제 해결 없이 국제사회와 관계 개선이 불가능함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는 김 제1비서를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경제 개혁에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질 것이다. 개혁을 추진하는데도 대외환경의 제약으로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김 제1비서를 비롯한 지도부는 핵 포기 여부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바로 그 시점이 우리에겐 기회다.

 정부 당국이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이를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해 활용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개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당장 지원에 나서지 않더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