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온실'서 연 18억 매출, 뭘 키우나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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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이야 공장이야.”

 ‘화성21’ 파프리카 온실(경기도 화성시 이화리)을 찾는 견학단이 어김없이 하는 얘기다. 이 유리온실에는 흙이 없다. 100% 수경 재배이기 때문이다. 양분과 물은 바닥에 깔린 관을 통해 공급된다. 일조량에 따라 컴퓨터가 공급량을 제어한다. 이렇게 재배한 파프리카 줄기는 4m까지 자란다. 온실 지붕만 높으면 6m 이상 자란다. 이 온실 규모는 2만5000㎡(7700평)에 이른다.

1997년 파프리카 재배를 시작한 최종성(65) 화성21 대표는 “일본에서 네덜란드산 파프리카를 수입해서 먹는 걸 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서 파프리카를 키우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농장 파프리카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최 대표는 “일본에서 오는 주문의 절반 정도만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은 18억원이었다.

 파프리카·딸기 등 시설 원예 작물이 한국 농업의 미래로 떠오르고 있다.

 25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면적(1000㎡)당 소득이 가장 높은 작물은 파프리카(1463만원)였다. 1~2월에 시장에 나오는 촉성 재배 딸기(1123만원), 온실에서 키운 장미(1067만원)가 뒤를 이었다. 모두 유리 온실 등에서 키운 시설 작물이다. 한때 농업 과잉 투자의 상징이었던 유리 온실이 농업계의 효자가 된 것이다. 유리 온실의 역설인 셈이다.

화성시 ‘화성21’ 파프리카 온실에서 최종성 대표가 농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농림수산식품부]

 시설 작물과 노지(자연 상태) 작물의 소득 차이는 컸다. 노지 작물 중 지난해 1000㎡당 소득이 가장 높았던 작물은 포도(388만원)다. 시설 재배 1위 파프리카의 26%에 불과하다. 겉보리와 쌀보리 등 식량 작물은 1000㎡당 소득이 15만~17만원에 불과했다. 소득은 작물별 표본 농가를 기준으로 집계했다. 또 시설 감가상각비는 반영되지만 토지와 농민의 노동력은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박승용 농촌진흥청 연구사는 “자본 투입이 많고 정밀한 재배기술이 필요한 작물일수록 소득이 높았다”고 말했다.

 같은 작물이라도 기술력과 규모화 정도에 따라 소득 차이가 컸다. 봄에 출하되는 시설 재배 토마토의 평균 소득은 1000㎡당 791만원이었다. 그러나 상위 20% 농가의 소득은 두 배가 많은 1567만원이었다. 시설 재배 호박은 상위 20% 소득이 평균 소득의 2.1배에 달했다. 노지에서 키우는 사과도 이 비율이 1.8배에 달했다.

이렇게 고소득 농가가 늘고 각종 보조금 등이 지급되면서 30~60세 미만 농가의 소득은 평균 4856만원(2010년 기준)으로 도시근로자의 평균 소득(4809만원)보다 많은 상태다.

 이렇게 벌이가 되면서 대를 잇는 농업도 시작되고 있다. 최종성 대표는 아들에게 농장을 물려줄 참이다. 아들 중락(35)씨는 미 일리노이대에서 농경제학을 전공했다. 최 대표는 “네덜란드가 유럽 전체 파프리카 시장을 휩쓸듯 한국도 동북아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며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설 투자 비용이다. 화성21도 온실 증설이 오랜 숙원이지만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좁은 농지 면적을 감안하면 자본·기술 집약적인 농업으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다”며 “저리 장기 융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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