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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밖'으로 나선 시인 김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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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이상적인 담론이 없습니다. 아무리 뒤죽박죽이라 해도 특히 젊은 세대의 담론이 있어야 합니다" 99년 단학선원과 갈등을 빚은 뒤 조용히 지내 오던 시인 김지하(60.본명 김영일)씨의 발걸음이 다시 바빠졌다.

최근 새생명 평화운동인 '지리산 공부 모임'을 시작했고 온라인, 오프라인 잡지에 잇따라 신작시를 발표하는가 하면 재일교포 잡지로부터 강연 초청을 받아 13일일본으로 간다.

경기도 일산 부근 카페촌에서 일본행을 앞둔 그를 만나봤다. 그는 6년 전부터일산 아파트에서 부인, 아들 둘과 살고 있다.

"그동안 쓴 시가 300여편에 불과할 정도로 억지로는 못쓰는 체질이죠. 지난 6년간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못썼는데 연초에 양산 통도사에 갔을 때 시가 다시 오기시작했어요. 요즘에는 매달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는데, 그때마다 이미지가 옵니다". 시인으로는 끝났고 이제는 사상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라고 정색했다. 이상적 담론이 없는 사회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자꾸 말을 하게 될 뿐 철학자나 이론가는 아니라는 설명. 앞으로 시작에 열중함은 물론 '율려(律呂)운동'도 적극 펴 나갈계획이다.

서구중심 문명의 대안으로 아시아 고대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율려운동을 쇼비니즘, 또는 복고주의로 일각에서는 비판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내 생각의 중심 뼈대는 '생명'입니다. '율려운동'도 그런 맥락이지요. 5월부터율려학교를 다시 시작합니다. 민예총에서 내년 하반기까지 강의하고 그 뒤 연구소같은 것을 만들어 율려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 '지리산 공부 모임'은 전쟁과 적대에서 벗어나 평화와 상생을 찾자는 취지라고소개한다. 또 지리산은 투쟁과 반목의 논리가 집중돼 많은 살상이 있었던 곳이기에생명과 평화운동을 펼치기에 적지라며 젊은 세대의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동서양 철학을 종횡하면서 설명은 막힘없이 이어졌다. 이분법적 사고 대신에 '이것이면서도 저것이다'라는 '이중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중성과 생명논법 등은 동학, 불교, 우리 민족의 상고사상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 들뢰즈, 미셸 셰르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설명. "남북 문제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도 이중성 사고로 풀어야 해요. 흡수통일은 안됩니다. 일본은 국수주의를 버리고 진보적 시각으로 역사를 재해석해야 하고 우리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했다. "아시아의 고대 사상은 무한한 보고입니다.

아시아인들은 과거 전통을 새롭게 보는 운동을 함께 펼쳐야 합니다. 아시아적 가치의 발견이자 아시아적 르네상스의 구현이지요. 개별 민족의 자만심이 들어설 틈이없습니다" 김용옥씨의 TV 강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강의가 아시아적 가치를 상기시키는 기폭제이긴 하지만 공자 가지고는 안되고 새 담론이 나와야지요" 그는 김용옥씨가 똑똑하며 지식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몸철학, 기철학 같은 것들은 나름의 컨셉트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썩 내키지 않을뿐더러 한 번도 그의 TV 강의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시인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시인은 자연-초자연, 이승-저승, 나-너, 주관-객관, 주체-타자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감수성을 한껏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답이다. 즉 "생명으로 가득찬 우주를 넘나드는 담론을 갖는 서정시들이 나와야 한다"면서 자신도 그런 시를 쓰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제 시 자체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진보와 해방을 부르짖던 시대와 달라져야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잖아요. 문학권력 논쟁 같은데 힘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미적 감수성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넷관도 들어 봤다. "기술만 발달했지 그 세계의 문화가 없어요. 욕설이 난무하고 자살사이트가 유행하는 등 부작용이 심합니다. 그래도 시인, 예술가들은 그것에 적극 접근해 이용해야 합니다. 단, 기계를 다룰 때의 윤리가 있어야죠" 거듭 사이버문화의 정착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이마미치 도모노부가 기술시대의윤리에 대해 쓴 「에코 에티카」의 일독을 권했다. 그 자신 '컴맹'이지만 문화교육사이트에서 강의하고 최근 홈페이지도 만들 정도로 인터넷과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 시대 많은 지식인, 학생들에게 경외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저항시인 김지하.올해 회갑을 맞은 그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역할과 비중도 크게 작아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제는 유명세 등에서 벗어나 조촐히 살겠다"며 미소지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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