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가 구제금융 검토 … 독일은 신용전망 강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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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방화벽이 뚫리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24일에도 스페인 국채 투매 사태가 이어졌다. 지난주 목요일 이후 나흘째다. 국채 금리가 한때 연 7.6%를 넘기도 했다. 견디기 힘든 금리 수준이다. 돈줄이 바짝 말라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통신 등은 일제히 “조금만 더 상황이 나빠지면 스페인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스페인이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스페인 정부가 몇 달짜리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현지 경제지인 엘이코노미스타가 이날 보도했다. 시중은행 구제금융과는 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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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유럽 재정위기의 불길이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중심부로 번지기에 이르렀다. 2009년 11월 그리스 위기 시작 이후 2년9개월 만이다. 스페인은 유로존의 4위 경제대국이다. 중앙정부 부채는 7330억 유로(약 1026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80억 유로를 10월에 갚아야 한다. 국채 투매 상황에서 조달하기 힘든 규모다.

뇌관은 지방정부 채무다. 17개 주정부의 빚더미가 1400억 유로에 이른다. 절반 가까이는 사실상 재정파탄 상태다. 부도 도미노가 시간문제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발렌시아주가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다른 6개 주도 뒤따를 전망이다. 스페인은 15세기 이후 수차례 내전을 치른 끝에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됐다. 하지만 공식 언어만 스페인어·카탈루냐어·바스크어 등 3개에 달한다. 지역 갈등이 뿌리 깊다. 스페인 최고대학인 콤플루텐세대학의 알폰소 팔라시오(경제학) 교수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각 지방정부는 자치에 가까운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갈등이 표면화하는 것을 막아 왔다”고 말했다. 그 결과 상당수 지방정부가 분에 넘치는 재정지출을 해왔으나 중앙정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팔라시오 교수는 “지방정부가 파산하면 하나의 스페인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돈을 넣어줄 수밖에 없다”며 “그렇지 않으면 스페인 연방은 해체된다”고 설명했다. 지방정부 재정파탄이 곧 중앙정부의 위기인 구조다. 이를 잘 아는 투자자들이 발렌시아 구제금융 요청 직후 스페인 국채를 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유로존의 대응 능력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임시 구제금융펀드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거의 바닥났다. 상설 구제금융펀드인 유럽재정안정기구(ESM)는 독일 내 헌법소원에 휘말려 예정보다 두 달 늦은 9월에나 설립될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리스의 9월 국가 부도설까지 제기됐다. 그렇게 되면 유럽 위기는 이탈리아로 전염될 수도 있다.

 다급해진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과 루이스 데 귄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이 24일 긴급 회동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에서 스페인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하지만 독일도 제 코가 석 자다. 하루 전인 23일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독일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남유럽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구제금융이 독일 재정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바람에 남유럽에 대한 반감이 독일 내에서 비등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이 자국민 반감을 무릅쓰고 ECB를 동원해 스페인 등의 국채를 매입하는 데 찬성할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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