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내 땅 근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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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강남구에 사는 홍모(78)씨는 2008년 2월 중순 A은행으로부터 “최근에 토지를 담보로 대출받은 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 적 없다”며 전화를 끊은 그에게 다음날 B은행에서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홍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더니 자신 소유의 의정부 땅(1218㎡)에 자기도 모르게 모 저축은행 명의로 23억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누군가 서류를 위조해 홍씨 땅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 가로챈 것이다.

 이 같은 수법의 대출사기단이 검찰에 대거 적발됐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24일 서류를 위조한 뒤 남의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챙긴 혐의로 서모(59)씨 등 10명을 구속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 등은 2008년 2월 초 홍씨의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해 대출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러고는 홍씨의 땅을 담보로 파주시의 한 저축은행으로부터 23억원을 대출받았다. 같은 해 3월에도 같은 수법으로 가평의 한모(56)씨 땅 7886여㎡를 담보로 양평의 한 은행에서 15억원을 빌려 가로챘다.

 조사 결과 서씨 등은 경기도 일대를 돌며 소유자가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 관리가 허술한 땅만을 골랐다. 그러고는 고양시의 한 주민센터에 근무하던 공익요원 차모(27)씨에게 건당 10만원씩을 주고 땅주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사진 등을 건네받았다. 이를 이용해 가짜 등기서류를 만든 뒤 공범인 법무사 선모(75)씨를 동원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수법을 썼다. 검찰 관계자는 “토지 물색부터 서류 위·변조까지 단계별로 점조직으로 연결된 토지사기단을 대거 붙잡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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