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인격' 태조왕건 해설 김종성

중앙일보

입력

성우 김종성(60)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늘 우리 주위를 맴돈다. 그는 KBS1의 인기 대하사극 '태조왕건'과 MBC라디오의 인기 드라마 '격동50년'의 해설을 맡고 있다.

방송계에선 그가 정치 드라마에 제격이라고 한다. 약간 톤이 높으면서 낭랑한 목소리가 갈등·대결·반전 등 극적인 표현에 어울리기 때문. KBS 특집다큐 '해방'이나 남북문제·민주항쟁과 관련된 다큐 프로에도 단골로 해설을 맡았다.

"목소리가 좋다고 성우가 되는 건 아닙니다. 성우는 목소리로 연기하는 겁니다. '…했다' 만 가지고도 수천 가지로 발음할 수 있는데, 가장 적합한 게 뭘까 고민이 끊이지 않아요."

'태조왕건' 의 해설을 자세히 들어보면 드라마의 어떤 부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도입부면 잔잔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클라이맥스면 발음이 엉기더라도 긴장감있게 읽어준다. 그는 "전쟁 장면이 이어지기 직전이라면 마지막 말의 어미를 세게 던져야 드라마 전개가 자연스러워진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1964년 TBC 전신인 라디오 서울의 성우로 출발했다. 인기 여성 성우인 장유진과 김세원이 그의 동기생이다. 70년대 동아방송으로 옮겨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라디오 정치 드라마 '정계야화'(김기팔 극본·안평선 연출)에서 신익희역과 해설자 목소리를 맡았다.

"당시엔 방송사마다 5~6개의 라디오 드라마를 편성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죠."

라디오 프로 '두시의 데이트'로 유명한 김기덕씨가 그의 친동생인 걸 보면 유전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듯하다.

"글쎄요. 제 생각엔 좋은 목소리도 인격을 도야하듯 좋은 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야 나옵니다. '목소리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란 게 제 지론이죠. 좋은 마음이 좋은 목소리의 기본이라는 뜻이에요."

이제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 직업이 뭔지,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다니 '달인'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목소리가 워낙 유명한 데다 택시기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드라마의 해설자이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많다.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택시기사들은 그가 목적지를 설명하면 "혹시 예전에 뵌 분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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