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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아이파크 2년새 11억↓…아파트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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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13일 오후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주변 L공인중개업소. 이 중개업소 김모 사장은 “한때 50억원을 호가(부르는 값)하던 247㎡형(이하 공급면적)이 39억원에 나왔다는 내용의 문자를 주요 고객 수십 명에게 보냈지만 한 명도 반응이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경매 9계. 고급아파트인 서초구 서초동 아트자이 8층 207㎡형이 감정가(20억원)의 80%인 16억원에 나왔지만 한 명도 응찰하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다음 달 14일 12억8000만원을 최저가로 다시 경매가 진행된다.

고가 아파트들의 시세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의 전경. [김도훈 기자]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이 13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주택시장의 ‘대장주’로 통하는 인기지역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도곡동 도곡렉슬, 서초동 반포래미안퍼스티지 등 일반 매매시장 분위기를 주도하던 아파트는 물론 강남구 은마·개포주공,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등 재건축시장 선도 단지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보통 인기지역 아파트는 침체기 때 상대적으로 덜 떨어지고 상승기에서는 여느 단지보다 더 올랐다. 하지만 요즘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장주 아파트의 하락 폭이 전체 평균보다 오히려 더 크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은 전달보다 평균 0.3% 떨어졌다. 이 기간 반포래미안퍼스티지 등 아파트 시가총액 상위 50개 단지로 구성된 ‘KB선도아파트 50지수’는 0.8%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간 2.4% 하락했지만 시가 총액 상위 50단지는 평균 7.4% 내렸다.

 래미안퍼스티지 87㎡형은 2009년 7월 입주 후 처음으로 9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로열층임에도 8억9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와 있다. 도곡동 도곡렉슬도 추락하기는 마찬가지. 2010년 13억원이던 109㎡형은 지난 5월 9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4년 전 20억원을 호가했던 142㎡형은 현재 14억5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법원경매시장에도 대장주 아파트가 흔해졌다. 올 들어 은마(12건), 압구정 현대(11건), 도곡동 타워팰리스(4건), 도곡렉슬(4건), 삼성동 아이파크(2건) 등이 경매법정에 등장했다. 대치동 동부센트레빌(2건) 등은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지지옥션 하유정 연구원은 “ 대장주 아파트는 거래가 잘돼 경매처분되는 경우가 드물었다”며 “올해처럼 한꺼번에 수십 건씩 나오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대장주가 많이 하락하는 것은 집값이 더 내릴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대장주 아파트의 주요 수요자인 부자들이 시장을 더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승기에 너무 많이 오른 것도 낙폭이 큰 또 다른 요인. 대치동 토마토공인 김성일 사장은 “호가가 너무 많이 올랐던 곳에서 최근 하나 둘 급매물이 늘어나면서 낙폭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장주의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집값 하락 전망이 우세해 투자 수요가 사라졌고 급매물은 쌓이는데 매수세가 붙지 않고 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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