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인=왕' 실버환자 모시기, 춘추전국시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치매 노인 환자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노인진료, 우리가 맡는다!”
노인진료비가 급증하면서 의료계 각 학회들이 진료영역을 선점하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각축전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현재까지 설립한 노인 관련 학회는 ▲대한노인의학회 ▲대한노인정신의학회 ▲대한노인병학회 ▲대한노인재활의학회 ▲대한노인신경의학회 ▲대한노인신경외과학회 ▲대한임상의학회 ▲대한노인응급연구회 등 10여 개다. 이들은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다는 목적 아래 문을 열었다. 1968년 설립한 노인병학회부터 올해 초 창립 한 노인응급연구회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노인진료 영역에서 한 축을 맡으려는 움직임이 치열하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노인 관련 학회가 점차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학회의 움직임은 실제 급증하는 노인진료비와 연관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1년 65세 이상 노인진료비는 15조4000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3.3%를 차지했다. 1990년에는 노인진료비의 점유율이 8.2%에 불과했다. 이같은 급증세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이용 증가, 최첨단 의술 및 치료제 도입 때문이다. 같은 기간 노인인구 비율은 5.6%늘었는데 노인진료비의 비율은 25.1% 증가했다. 70세이상 노인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20년 새 11만 원에서 327만 원으로 30배를 웃돌았다.
-질병 가이드라인·대국민홍보 박차
노인관련 의학회와 연구회는 질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홍보하거나 인증의제를 도입해 노인질환 전문가의 자리를 선점하는 데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정책의 대화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올해 3월 노인응급연구회를 창립했다. 응급실에 오는 노인환자는 여러 질환을 동반하며 약물을 복용하고, 신체 장기기능과 인지기능이 감소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속한 중증도 분류와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노인 환자들의 응급진료에 대한 연구와 경험을 공유해 노인응급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다. 급증하는 노인진료비 중 상당부분은 응급실 진료와 연관이 있을 거란 이유도 한 몫 했다.
연구회 왕순주 회장은 “미국의 경우 노인응급의학이 응급의학의 분야로 활성화돼 있으며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공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술활동도 활발하다”며 “연구회에서는 국내 노인응급환자의 생존과 예후를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와 정책 관련 활동을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노인의학 관련 단체들은 인증의제와 질병 가이드라인을 통한 대국민홍보활동에 한창이다.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영향력을 강화하면 정부정책의 파트너로 자리 매김할 수 있어서다.
지난 1968년 창립한 대한노인병학회는 이달부터 ‘우리동네병원찾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학회에서 주관하는 노인병 인정의를 취득한 회원을 알리기 위한 대국민 홍보 차원에서다. 홈페이지에서 우리동네병원찾기 배너를 클릭하면 노인병 인정의를 취득한 병의원의 의사를 찾을 수 있다.

   ▲노인병학회는 노인증후군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우리동네병원찾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노인병학회는 올해 초 노인증후군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에 나섰다. 시력과 청력저하, 현기증, 치매, 낙하사고 등 노인들이 많이 앓는 질환에 대해 알리는 가이드라인이다. 노인병학회는 가이드라인에서 “노인증후군은 치료가 아주 복잡하다. 노인병 전문의는 이들 질환의 전문가”라고 피력하고 있다.
대한노인재활의학회도 지난 해 낙상예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를 펴고 있다. 낙상으로 인한 후유증을 치료하기에 앞서 낙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서는 규칙적인 운동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의·약사에게 복용 중인 약물을 검토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인증의제도 도입은 고민 중이다.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자칫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학회 김미정 총무이사(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는 “노인재활의학회는 의사가 아니더라도 노인의 재활을 돕는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 모두에게 열려있는 학회”라며 “단순한 의사들의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폐쇄적인 인증제를 도입하는데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외에 대한노인정신의학회는 노인정신건강인증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회는 노인의 우울증과 자살에 관심을 갖고 정신보건센터에서 이를 담당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신의학회 이동우 총무이사(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노인의 우울증과 자살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정부에 정책적 제안을 계속하고 있다”‘며 “학회는 정부의 치매예방사업을 위탁받아 치매전문의사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신경의학회는 노인환자 간병을 위한 간병매뉴얼 제작에 나선 상황이다. 3500여 명의 개원의사들이 주축인 대한노인의학회도 노인병인정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임상노인의학회는 노인의학전문인정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회는 연 4회 학회지를 발간하면서 흥미 있는 임상증례를 보고하는데 노인의 임상사례에 대한 저서도 함께 출간하고 있다.
비뇨기과학회는 노인요양병원사업에 비뇨기과 전문의를 참여시키는 게 주력과제 중 하나다. 비뇨기과 의사가 참여해 노인들의 배뇨문제를 관리할 수 있어야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학회는 비뇨기질환을 알리는 ‘블루애플 캠페인’의 일환으로 올해 전국 50개의 노인복지관, 노인대학을 찾아가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강좌를 펼칠 계획이다.
복지부 노인건강정책팀은 “복지부에서는 치매지원사업처럼 위탁을 준다거나 노인 관련 단체에서 시행하는 사업에 지원을 해주고 있다. 노인의료와 관련 한 정책이 나오면 여러 관련 단체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보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성제고는 긍정적, 단체 난립은 우려
노인 의료와 관련 한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을 하면서 노인 진료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측면은 긍정적인 효과로 꼽힌다. 다만 늘어나는 노인 진료비를 더욱 증가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거나, 단체가 난립해 갈등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으로 꼽힌다.
노인관련 학회의 한 관계자는 “노인의학과 관련 한 학회들이 남발되는 게 사실”이라며 “학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긴 하지만 결국 진료비 챙기기 경쟁에 나서 학회나 과 간 갈등을 일으키고 국민에게도 의료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학회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학회가 창립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타 과의 발빠른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한 이유도 컸다.
A학회 관계자는 “지난 2004년 노인장기요양보험 계획안이 발표되면서 내과 중심의 노인내과학회(현 대한노인의학회)가 창립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기구로서 과내에 노인의학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가 현 학회의 기틀”이라고 말했다.
이어 “낮 병동과 전문 물리치료 등의 영역에서 처방권을 획득하기 위한 작업, 노인의료에서 우리 과의 역할에 대해 정책 자료집을 발간하고 정부부처와 논의하는 자리 등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왔다”고 말했다.
노인정신의학회 이동우 총무이사는 “노인의학과 관련 한 기반이 많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라며 “다만 학회 간 갈등이 아닌 협조의 분위기를 만들고 서로 공조히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노인의학 관련 학회가 함께 공조 해 이뤄낸 결과물도 있다. 바로 국제학술대회 유치다. 노인병학회와 노인정신의학회 등의 공조 아래 내년 6월에는 서울에서 ‘제20차 세계노년학-노인의학대회’가 열린다. 이동우 총무이사는 “노인병학회와 노인정신의학회, 노년학회, 노화학회가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를 만들어 지난 2005년 브라질에 가 대회를 유치해왔다”고 말했다.
국제노년학-노인의학회는 UN의 노인관련 자문역할을 수행하는데 4년마다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학술성과를 교류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이후 두 번째로 개최된다.
대한노인의학회와 임상노인의학회도 상호협력의 일환으로 오는 10월 열리는 추계학술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노인의학회 이욱용 회장은 “공동학술대회 개최는 처음이지만 개원의와 의대 교수 간 교류로 학술적 분야에서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상생할 수 있는 토대 또한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인의 질병 치료가 아닌 ‘잘 늙는 법’에 관심을 두는 학회도 있다. 진료영역을 확장하는 것보다 병이 나기 전 건강하게 관리하는 법을 알리는 게 노인의료의 중요한 과제가 돼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노인재활의학회 김미정 총무이사는 “올해 추계학회 주제를 건강하게 잘 늙자라는 뜻의 well-aging으로 정했다”며 “노인의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예방차원에서 복지부 노인정책팀과 간담회를 갖고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등 다양한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기기사]

·'노인=왕' 실버환자 모시기, 춘추전국시대 [2012/07/16] 
·20억 원대 의료기기 리베이트 적발 [2012/07/16] 
·"포괄수가제 음모" 의협 동영상 눈길 [2012/07/16] 
·'수족구병 주의보' 국내 첫 사망자 발생 [2012/07/16]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약이란? [2012/07/16] 

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