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족력 있으면 절주 또 절주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한국인처럼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국민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식사나 모임 때마다 둘 이상만 모이면 으레 술이 빠지지 않는다. 아니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술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져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흔히 도박·알코올·인터넷중독을 3대 중독이라고 하지만 술만큼 폐해가 큰 중독은 사실 없다.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치명타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가정과 직장에서 격리된 채 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고, 가족은 이를 뒷바라지하느라 등골이 휘는 경우가 많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남궁기(사진) 교수에게 알코올 중독에 대해 알아봤다.

-알코올 중독이란.

“알코올 중독을 진단하는 7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술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예전처럼 취하려면 더 많은 술을 마셔야 함) 둘째, 자기가 의도한 것보다 많이 마시게 되며 셋째, 술을 먹고 깨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넷째, 술을 마시느라 직업·사회·휴식활동이 감소하고 다섯째, 술을 피하려는 의지는 있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여섯째, 술 때문에 생긴 질병이 있고 일곱째, 손 떨림이나 헛것이 보이는 등의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 중 세 항목 이상 해당하면 알코올 중독으로 본다.”

-알코올 중독은 어떻게 진행되나.

“보통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는 게 20대 중반부터라면 30대 전후 이 중 하나 정도의 증상이 생긴다. 내성이 가장 먼저 생기고, 음주량 조절을 잘못해 계획보다 훨씬 더 마시는 경우가 두 번째로 생긴다. 그래도 계속 음주를 과다하게 하면 40대 중반부터 세 가지 이상의 증상이 나타난다. 질병이나 금단증상은 가장 나중에 생긴다. 물론 사람마다 패턴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떤가. 술에 대한 내성도 있고 의도한 것보다 매번 훨씬 많이 마신다. 술 때문에 가끔 지각을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증상이 없어 본인은 알코올 중독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손 떨림이나 간질 발작, 섬망(헛것이 보이는 등의 증상) 등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코올 중독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물에 잠길 때를 생각해 보자. 발목·허리·가슴까지 차오를 땐 모르다 코까지 차 올라야 알아차린다. 그땐 이미 늦었다. 사망 직전 단계다. 알코올 중독도 같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뇌와 간세포가 점점 파괴되지만 생명을 위협하기 전까지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잘 모른다. 7가지 진단 기준 중 한두 가지가 나타나면 빨리 금주하고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 보는 게 좋다.”

-알코올 중독이 되면 신체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알코올은 특히 뇌 전두엽 부분을 망가뜨린다. 뇌가 쪼그라든다는 말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인데, 오랫동안 알코올 중독을 방치한 사람은 50~60대쯤 가서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괴팍한 사람이 되기 쉽다는 거다. 알코올은 전두엽을 시작으로 해마 등 다른 뇌세포도 망가뜨려 결국 기억장애나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블랙아웃(전날 술 마실 때 상황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경우)이 있는 사람의 치매 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 더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알코올 중독에 특히 취약한 사람이 있나.

“유전적 영향이 크다. 알코올 중독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에게 많이 발생한다. 유전적으로 술 분해효소가 많은 사람이 술을 잘 마신다. 술이 들어가도 몸에서 거부반응이 없으니 많이 먹게 되고, 뇌·간도 그만큼 망가져 간다. 반면 체질적으로 술 분해효소가 없는 사람은 술을 못 먹으니까 알코올 중독 위험이 거의 없다. 가족 중 알코올 중독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중독 가능성이 네 배 더 높다.”

-어떻게 치료하나.

“크게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로 나뉜다. 약물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술을 마셨을 때 나타나는 ‘기분 좋음’ 현상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하나는 술을 안 먹고 있을 때 나타나는 ‘술 고픈’ 느낌을 억제하는 약이다. 환자 증상에 따라 약물을 선택적으로 복용한다. 인지행동치료도 중요하다. 왜 술을 끊어야 하는지 동기 부여가 가장 필요한데, 체계적인 논리 프로그램으로 단주의 필요성을 인지한다.”

-재발도 잘 되고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다던데.

“알코올 중독 자체가 완치될 수 없는 병이다. 고혈압·당뇨병과 같이 죽을 때까지 관리해 가는 병이다. 당뇨병도 잘 관리하다가 혈당 높은 음식을 과다 섭취하면 다시 심한 당뇨병이 생기는 것과 같다. 알코올 중독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치료센터로 가서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평생 동안 술은 단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는 각오로 살아야 한다. 일부에선 딱 한 잔은 괜찮지 않으냐고 하는데 알코올 중독자는 자제력이 없다. 한 잔만 마셔도 된다고 하면 매일 큰 대접으로 한 사발씩 마시고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또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열 잔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방법은 없을까.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금주가 최상이겠지만 이게 힘들다면 절주(節酒) 또 절주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술로 풀지 말고 운동이나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틀 연속 마시지 말고 해장술은 절대 금한다.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면 끊는 데 도움이 된다. 집안의 모든 술을 치우고 예전에 다니던 술집이 있는 길로 가지 않는다. 자신이 주도해 술 마시지 않는 모임을 만들고 저녁보다는 조찬 모임을 갖는 게 좋다.”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