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히터] 인생길 바꾸어 놓는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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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프로야구 원년의 김유동, 84시즌의 유두열과 마찬가지로 홈런 한 방으로 한순간 야구사에 길이 남는 불멸의 스타가 된 행운의 메이저리거도 있다.

1951년 8월 11일까지 내셔널리그의 뉴욕 자이언츠는 같은 뉴욕을 근거지로 하는 브루클린 다저스에 무려 13.5게임차로 뒤져있었다.

선두주자인 다저스가 반타작 승률로 시즌의 종반을 채워간 반면, 자이언츠는 39승 8패라는 무서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두 팀은 96승 58패 동률로 정규시즌을 마쳤고 월드시리즈 진출을 앞두고 3전2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루게 되었다.

두 팀은 1승 1패가 된 뒤 운명의 3차전을 맞게 되었다. 8월부터 이미 '자이언츠는 죽었다'고 의기양양해 하던 다저스가 4-1로 리드한 가운데 자이언츠는 9회말 마지막 공격만 남겨두고 있었다. 연속 3안타로 4-2까지 따라붙은 뒤 1사 주자 2·3루의 득점 찬스에서 타석에는 그때까지 별볼일 없었던 바비 톰슨이 들어섰다.

톰슨은 구원투수 랄프 브랑카로부터 끝내기 3점 홈런을 때려내서 자이언츠에 5-4로 꿈만 같은 역전승을 안겨주었다. 이 홈런은 '세계에 울려퍼진 한방(The shot heard round the world)'으로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때까지 개인상 한번 타보지 못한 보비 톰슨은 이 홈런으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야구선수가 되었고 일약 스타덤에 올라앉으며 돈도 벌었다.

톰슨은 2년 뒤인 54년 2월 캘더론이란 포수와 함께 밀워키로 보내졌다. 하지만 톰슨은 트레이드 뒤 보름 만에 동계훈련 연습경기 중 발목을 다쳐 벤치로 쫓겨났고 그 자리엔 만 20살이 넘은 신출내기 선수가 들어섰다. 바로 이 신출내기가 뒤에 홈런왕으로 미국을 떠들석하게 한 행크 애런이다.

애런은 보비 톰슨이 발목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755개의 홈런을 때려낼 수 없었던 것.

이런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빛을 본 경우는 국내에도 있다. 82년 OB의 주전 1루수요원으로는 이근식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시즌개막을 앞두고 동계훈련 중 이근식은 설사로 고생했다. 당시만 해도 이름이 없던 키 큰 신경식이 연습경기에 이근식 대신 출전, 맹타를 때려내고 발레하는 듯한 뛰어난 수비솜씨를 보여 주전자리를 꿰어찼다.

이런 예는 뉴욕 양키즈 전성기의 3번 타자였던 루 게릭에게서도 볼 수 있다.

2,130연속경기 출장의 위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도 부동의 1루수였던 윌리 핍이 배탈이 난 틈에 그 대신 1루수로 경기에 나온게 그 기록의 시작이었다.

이제 동계훈련은 끝나고 다시 시즌이 시작된다. 위의 예에서 보듯 주전 선수의 자리를 꿰어차기 위한 기존 선수들과 신인들사이의 암투가 치열해 질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 '적은 밖에 있는게 아니라, 선수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 적은 바로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부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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