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늙은 일본' 과 경기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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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무너진 이후 '잃어버린 10년' 이 돼버린 일본경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경제는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침체가 지속될 것인지, 그리고 어려워진 미국경제와 함께 일본경제가 어떻게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에 바로 인접해 있고 수출에 크나큰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 미래 불안에 씀씀이 줄여

현재의 일본경제는 하나의 단순한 요인이 작용하기보다는 정보화.세계화라는 변화에 대한 대응 미흡,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 지연, 개혁을 추진할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계속되는 기업도산과 증시붕괴, 지속되는 소비위축 등이 혼재한 '복합불황' 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경기진작을 위해 10차례에 걸쳐 1백조엔에 이르는 공공투자를 하고, 이자율은 0%에 근접함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별무다.

더욱이 지난 8일 일본의 누적 재정적자가 국내 총생산(GDP)의 1.4배인 6백50조엔에 이르자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재무상은 일본의 재정상태가 붕괴상황이라고 진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본경제는 GDP 중 약 55%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소비가 회복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일본 국민은 자본주의 역사상 최저라는 현 금리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발생하면 저축해 민간소비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일본사람들은 두둑한 돈지갑을 풀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불안한 미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한 미래의 근저에는 일본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출생률은 1975년을 고비로 떨어지기 시작해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현재 1억2천5백만명인 일본 인구가 21세기 말이 되면 절반도 안되는 5천만 내지 5천5백만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지난해 이미 14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14.8%로 3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고, 65세 이상 노인은 16.7%나 됐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께에 4명당 1명꼴로, 2050년께는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급속히 '늙은 일본' 이 국가의 활력을 빼앗아가고 일본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자녀에게 의지하던 시절은 지났고, 재정이 구멍난 국가가 도와줄 것 같지도 않다.

실업증가와 평생고용제의 축소경향은 기업 또한 더 이상 안전망이 될 수 없도록 됐다. 주가가 뛰거나 부동산 값이 올라 자산이 불어날 전망도 없다.

유일한 안전망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한푼이라도 아껴 스스로 미래에 대비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많은 일본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한꺼번에 씀씀이를 줄이자 경제 전체에 연쇄적 악순환이 나타났다. 소비침체로 물건이 안 팔리자 기업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실업은 증가하게 됐다.

이는 더욱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축소경향의 일본경제를 선순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 또한 부재다. 따라서 일본에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모멘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 고령화사회 대비책 긴요

이러한 '늙은 일본' 현상은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7%를 상회해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 에 돌입했고, 2022년에는 14%를 넘어 '고령 사회' 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돼 '늙어가고 있는 한국' 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우선 당장 일본 경기침체의 지속 가능성에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이나 지식사회에 대비한 교육 등을 통해 노동인구 1인당 생산성을 높여 나가고 노령인구, 특히 노령 지식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경륜과 열정, 그리고 정신적 젊음이 조화되는 '젊은 한국' 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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