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건설, 출자전환의 조건

중앙일보

입력

국민경제의 엄청난 불안요인인 현대건설 처리를 놓고 아직도 정부가 문제의 핵심과 해결방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요즘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의 출자전환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금융비용 등으로 9천억원의 자본잠식이 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정부가 "현대건설을 살려야겠다" 면 출자전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진념(陳稔)경제부총리의 말처럼 현대건설은 영업이익이 나기 때문에 동아건설과 달리 처리할 수도 있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정부의 '현대 살리기' 방안이 처음부터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출자전환은 이를 통해 현대건설이 확실히 회생하고 다시는 국민경제의 불안요인이 안될 경우에만 해야 한다. 출자전환에도 불구하고 현대가 다시 위기에 빠진다면 국가 손실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제까지 현대건설의 재무.영업구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최고경영진의 능력, 향후 건설업의 전망 등 근본적인 경영혁신 방안에 대한 뚜렷한 확신 없이 '살리기' 부터 시작했다.

그에 앞서 당연히 했어야 할 현대건설에 대한 실사를 불과 열흘 전에 시작했다. 회생가능의 근거로 정부가 내놓는 자료도 영업이익 정도밖에 없다.

건설업체의 분식회계가 크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신뢰를 받기는 힘들다. 우리가 정부의 '현대 살리기' 를 무조건적 지원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똑같은 잘못을 출자전환에서 반복하고 있다. 실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성급하게 출자전환 방침을 거론하고 있다.

현대건설 문제 처리는 향후 나올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 결정해야 한다.

부실이 매우 심해 회생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청산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또 출자전환은 현대건설 회생의 필요조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건설의 경영.사업구조의 혁신 가능성도 같이 검토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될 경우에만 정부와 채권단은 시장의 동의를 구하고 출자전환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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