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개 숙이는 사교육 시장, 숙제는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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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교육 열풍이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중앙일보가 최근 ‘사교육 1번지’인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를 취재한 결과 건물 43개 동 가운데 11개 동에 ‘임대’ 플래카드가 내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원생을 구하지 못해 폐업하는 학원이 늘어나면서 학원가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코스닥에 상장된 메가스터디만 봐도 식어가는 사교육 시장의 현 주소를 짚어볼 수 있다. 2008년 한때 주당 38만원을 웃돌던 이 업체의 주가는 4년 만에 8만1500원으로 떨어졌다. 2조원에 육박하던 시가총액도 현재 5000억원 수준으로 반의 반 토막 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사교육과의 전쟁이 승리했다”며 반색하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특목고 입시 전문의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들이 운영난에 빠진 배경에는 특목고 입시를 내신 위주로 바꾼 조치가 큰 역할을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EBS 교재의 반영비율을 높이고, 입학사정관제 도입과 수시모집 강화 등 대입 전형을 다변화시킨 것도 사교육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초·중·고 학생 수가 급속히 감소하는 게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여기에다 경기 불황으로 가계들이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일단 사교육 광풍(狂風)이 꺾이기 시작하는 조짐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던 학생들이 한숨을 돌리고, 사교육비에 짓눌렸던 가계들도 다소나마 부담을 덜게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사교육 비중 축소도 우리 사회가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이런 바람직한 흐름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갈지가 숙제로 남았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근본적인 해법은 공교육 바로 세우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교원 평가제 등을 통해 공교육의 경쟁력과 질(質)을 높여야 한다. 또한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졸(高卒) 시대’를 열어가야 대입 위주의 과도한 교육열을 잠재울 수 있다. 대입 전형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화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의 ‘돈으로 교육을 살 수 있다’는 비뚤어진 인식을 바로잡기까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