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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꿈 좇아 나이 마흔에 토 슈즈 신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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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람을 좌절하게 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인 듯하다. 과거의 내 경우도 공연히 삶이 불만스럽고 고단할 때면 이루지 못했던 꿈에서 그 핑계를 찾곤 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발레리나’를 꿈꿨다. 이번에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처럼. 그러다 십수 년 전, 나이 마흔이 코앞에 다가왔던 그때에 나이 먹는 것보다 끝내 춤춰보지 못하고 인생을 끝맺게 될까 봐 서글퍼졌다.

 그래서 무턱대고 예술의전당 ‘성인발레교실’에 등록했다. 그 반에서 나는 지진아였다. 발레는 팔·다리·몸통·머리가 다 따로 노는데, 내 몸은 서로 너무 의존적이어서 따로 놀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아예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여 동안 참 부지런히 발레를 배웠다. 나중엔 아예 대학생 선생님을 모시고 매주 두세 번씩 밤 9시부터 10시가 넘도록 배웠다. 헝가리에 출장을 갔을 때는 호텔 정원이 넓기에 다음 날 새벽 어슴푸레 일어나 그 정원에서 순서가 헷갈려 삐걱댔던 왈츠 연습을 수십 번이나 한 끝에 모든 순서를 몸에 익히고 돌아오기도 했다.

 워낙 의욕이 넘쳤던 터라 토 슈즈에 도전했다. 그 딱딱한 석고 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면,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며 동시에 땀이 솟는다. 그럴 때면 묘한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나이 들어가는 내 관절에 그런 쾌감은 무리였던 것이다. 발목에 탈이 나면서 발레 교습은 끝이 났다. 그 후 발목 고치랴, 운동 그만두고 부풀어 오르는 살을 감당하랴, ‘다 늙어서 공연한 일 벌여 소란 떤다’고 구박 받으랴 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알게 됐다. 실은 내가 발레에 별로 소질이 없다는 것을. 더불어 이렇게 흘러온 내 인생이 결코 잘못된 것도, 더 고단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 현실이 섭섭했지만 꿈에서 해방된 건 또 다른 상쾌함을 가져왔다. 강수진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됐다던 소식에 부럽고도 짠했던 과거는 지나고, 서희가 ABT 수석무용수가 됐다는 소식엔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요새 친구들을 만나면 부쩍 한탄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한동안 자식들 대학 보낸 ‘무용담’이 주를 이루더니, 이젠 옛꿈을 이루지 못한 한을 토로하는 일이 많다. “나는 원래 ○○○이 되고 싶었는데…”라는 한숨 소리 뒤에 간혹 분노가 묻어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을 이해한다. 소싯적 꿈에 갇힌 삶이 얼마나 불만스러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은 발레교습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어쩌면 꿈을 이루지 못한 건 불운해서가 아니라 지금 인생이 최선이어서 이렇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질 없는 내가 100만 년 춤을 춘다고 서희가 되겠나. 그럼 또 불만스러웠겠지.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다. 꿈에 대한 지나친 찬사와 몰입은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

글= 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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