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호 폐기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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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공간에서 화재와 충돌, 장비 고장은 물론 구(舊) 소련의 붕괴까지 이겨낸 미르호가 23일 대기권에 진입해 불타고 파편이 남태평양에 떨어짐으로써 15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미르호가 첨단 우주개발의 상징에서 쓸모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한 때 미국을 제치고 우주개발에서 가장 앞섰던 강대국에서 이제는 우주개발에 관한 한 미래가 불투명해진 러시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국민은 미르호 폐기를 자존심이 추락하는 것이라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있지만 전문가들은 미르호가 남긴 숱한 업적을, 인류가 우주로 나가는 토대가 되는소중한 유산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소련이 미르호를 발사한 1986년 2월 당시 미르호는 소련의 기술적 위대함과 우주탐사 분야의 선도적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나 소련의 붕괴와 함께 러시아 재정이 악화되면서 미르호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르호는 발사 때부터 소련의 쇠퇴를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미르호가 발사된 시점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하기 5주 전이었으며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개월 전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러시아 국민은 미르호 폐기를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르호 폐기작업이 시작된 뒤 세계 각국은 만일의 사고를 염려했으나 러시아의우주비행사와 정치가, 언론 등은 러시아의 강대국 상징물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모스코브스키 콤소몰레츠지(紙)는 "미르호 폐기로 러시아가 강대국의 위치를 차지하던 한 시대에 줄을 긋게 됐다"고 논평했으며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는 "미르호 폐기는 러시아의 유인 우주계획에 치명적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르호 폐기로 직장을 잃게 된 우주비행사들은 미르호 폐기로 우주개발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며 미르호의 상업적 활용을 주장하며 미르호를살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미 막대한 미르호 유지비용을 감당할 능력을 잃은 상태다. 유리 코프테프 러시아항공우주국 국장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참여하는 것만이 러시아가 최첨단 우주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르호 폐기에 대해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느끼든 미르호는 인류의우주개발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미르호의 최대 업적 중 하나는 인간과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우주공간에서 장기체류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원래 5년 간 활용할 목적으로 발사된 미르호는 15년 간 우주공간에 머물며 지구를 8만6천320바퀴(22일 현재) 회전했으며 12개국 104명이 미르호를 방문했다.

러시아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랴코프는 438일 간 머물러 최장기 우주공간 연속체류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세르게이 아브데예프는 3회에 걸쳐 2년이 넘는 747일을 우주공간에서 보냈다.

특히 미르호는 실험장치를 싣고 무중력 상태에서 물리, 화학, 생물 실험을 계속해 이 분야에서 우주왕복선에 의존하는 미국을 크게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우주개척재단(SFF)의 릭 텀린슨은 "러시아는 우주 장기체류에 관한 한 미국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으며 미국우주비행협회(AAS) 제임스 커크패트릭 이사는 "미르호는 사라졌지만 미르호는 인류가 우주공간에 장기체류할 수 있게 한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영원히 인류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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