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기 고비마다 정치가 '딴죽'

중앙일보

입력

일본은 지난 10년간 근본적인 개혁을 망설이는 바람에 여러 차례의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모건스탠리 딘위터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로버트 펠드먼은 최근 도쿄의 일본기자클럽에서 '정치불황 직전의 일본경제' 라는 강연을 통해 '주기적인 위기론' 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위기에 적당히 대응해 상황이 다소 개선되면 위기의식이 둔해져 다시 어려움을 맞는 사이클을 되풀이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휘청거리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많다.

펠드먼은 '위기→반응→개선→태만→위기' 의 순환론을 통해 일본경제 10년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제1순환(1991~94년)〓버블(거품)경제가 무너지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92년 공공투자 중심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은데 이어 93년 호소가와(細川)내각에서는 소비진작을 위한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성장률 하락세가 진정되고 94년엔 경제가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그러나 94년 자민.사회당의 연립이 이뤄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사는 경제개혁보다 정권연장에 집중됐다. 이것이 일종의 태만인 셈이다. 이 때문에 95년 다시 주가가 급락하고 불경기속에서 달러당 80엔대의 엔고(高)가 닥치게 됐다.

◇ 제2순환(95~97년)〓일본 정부는 95년 11월 금융빅뱅.행정개혁.규제완화를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개혁안을 마련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컴퓨터.휴대전화 붐으로 96년에는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4.4%로 높아졌다. 불황이 끝나는가 싶었다.

이때 발목을 잡은 것이 개혁에 대한 저항이다. 정부.기업.은행 등 각 분야에서 위기의식이 느슨해져 개혁이 신속히 추진되지 못했다.

또 하시모토(橋本)내각은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며 97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리는 동시에 재정긴축을 실시했다. 이것이 97년 아시아 통화위기와 겹쳐 98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 제3순환(98~2000년)〓오부치(小淵)내각이 등장해 다시 고단위 경기부양책을 동원했다. 재정악화를 불사한 공공투자와 제로금리 정책 및 구조조정이 동시에 실시됐다.

또 인터넷붐을 타고 정보기술(IT)관련 투자를 늘리는데 정책의 비중이 두어졌다. 이에 따라 99년초부터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 취임 후 정치불안으로 개혁작업이 느슨해졌고 이로 인해 모처럼 피어난 경기의 불씨를 살려놓는데 실패했다. 모리 내각은 재정적자를 의식해 확실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지 못했고 경기위축을 걱정해 신속한 구조조정도 망설이는 실수를 했다.

◇ 제4순환(2001년~)〓주가폭락.수출감소.소비위축이 닥쳐 경기가 냉각되고 있다. 확실한 개혁비전이 없어 기업.개인이 모두 장래의 경기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협조해 경기대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콜금리는 0%로 낮추고 엔저를 유도하기로 했다. 디플레를 막기 위해 일본은행이 인플레 목표율까지 도입했다. 위기에 대해 일단 반응은 한 셈이다.

◇ 위기의 악순환 끊으려면〓위기가 반복돼온 것은 대응국면에서 잘못된 처방을 내리거나 정치권의 위기의식이 결핍된데 따른 것이다.

현재의 일본정치로는 앞으로 또 한차례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 순환고리를 끊으려면 오는 7월 참의원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이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과감한 재정개혁과 구조개혁을 추진하도록 정계에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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