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피해 울타리 나온 황소, 뿔아 솟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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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살림, 180쪽, 1만 2000원

그 날 황소는 탈출을 결심했다. 피의 도륙이 있던 밤이었다. 전기톱을 든 남자가 암소의 목을 잘랐다. 톱 한쪽으로 피와 살이 쏟아졌다. 짧은 칼을 쥔 남자가 오싹한 얼굴로 암소의 입을 자르고 혀를 뽑았다. 몸에선 배와 등뼈가 차례로 잘려나갔다. 내장을 도려낸 암소의 몸은 텅 비었고, 가슴은 마치 벌린 입처럼 황소를 노려봤다. 신세계로 향하는 길이라 믿었던 컨베이어 벨트는 육신이 유린되고 찢기는 지옥불이었다.

 탈출은 녹록하지 않았다. 목장 밖에는 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덤불이 있었고, 야생의 목초지는 빈약했다. 굶주린 코요테가 그의 살과 거죽을 노렸다. 농장의 일꾼들은 도망간 가축을 잡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갈았다. 함께 탈출했던 아들 송아지는 야생의 삶에 굴복했다. 아들이 죽던 날 황소는 절벽에 올랐다.

 수천 마리의 소들이 울타리 안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곧 도축장으로 끌려갈 운명이었다. 황소는 “어쩌면 울타리 안에 사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소는 울타리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목장 밖의 황소는 고독했고 고단했지만, 밤마다 수사슴처럼 커다란 뿔이 생기는 꿈을 꿨다.

 이 소설은 언뜻 공장형 밀집사육과 대량 도축을 비판하는 『육식의 종말』류의 서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삶에 내가 지배될 것인가’ ‘내가 삶을 지배할 것인가’란 선택의 기로 앞에선 인간을 황소에 빗댄 한 편의 우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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